[국제갤러리] 오스카 무리조(Oscar Murillo) 개인전 《Catalyst》 개최

국제갤러리는 11월 29일부터 2019년 1월 6일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오스카 무리조의 개인전 《Catalyst》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flight〉 드로잉 연작, 〈catalyst〉 연작 외 회화, 대형 캔버스 설치, 비디오 등 지난 6년간 폭넓게 전개해온 작업 세계 전반을 대표하는 2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특히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업과 전시 공간을 긴밀하게 엮어내는 설치를 통해 K2와 K3의 화이트큐브 공간을 에너지가 응집된 긴장의 상태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가 엿보인다.

1986년 콜럼비아 태생인 오스카 무리조는 1997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후 런던에서 생활했으며, 2012년 영국왕립예술학교 재학 중 본격적으로 작품 및 전시 활동을 시작했다. 무리조는 다양한 크기로 분열된 천 조각들을 다시 하나의 아상블라주(Assemblage,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로 엮어낸 평면 위에 유화 물감으로 맹렬히 휘갈긴 양상의 작업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이른바 스타덤에 오르게 한 지난 6년간의 작업활동을 면밀히 살펴보면 드로잉, 판화, 회화,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장르가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서 각 전시 환경과의 소통 내역을 엮어내는 작가 특유의 언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리조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정착 혹은 안주의 불가능성”이다. 이는 태생적으로는 이민자로서, 미술계의 적극적인 조명 하에 전세계를 유랑하며 활동하는 작가로서,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각종 사회·정치적 분쟁이 순환되어 무감각해지는 상태를 일상적으로 경험한 세대이자 기록 및 수집에 대한 강박을 문화적으로 습득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형성해온 그의 배경과 무관할 수 없다. 작가는 작품의 제작장소를 스튜디오로 국한하지 않으며, 따라서 작업의 매체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접한 환경에서 수집한 파편들과 흡사 자동 기술법적인 작가의 그리기 행위를 기록하는 표피층으로 기능할 뿐 전형적인 매체의 특성으로 고착되지는 않는다.

전시 공간에 간헐적으로 설치된 〈flight〉 드로잉 연작은 쉴 새 없이 이동하며 작업하는 작가에게 있어 비행기 혹은 호텔에서 보내는 이동 시간의 흔적이 종이 위에 축적된 기록이자, 복잡다단한 생각이 연쇄적으로 두뇌로부터 자동 다운로드 되어 손으로 흘러나가듯 볼펜으로 그려낸 무의식의 드로잉이다. 비행경로, 지도, 기호, 이니셜 등의 반복적인 등장은 카오스 속에서 모종의 질서를 확립한 강박의 낙서로 읽힌다. 비행은 일상이 흘러가는 지상과 물리적인 거리를 둘뿐 아니라 일상을 측정하는 기본 단위인 시간으로부터도 어긋나있지만, 수천 미터 아래의 정치적 지형이 좌지우지하는 비행 경로로 인해 그 움직임이 지상(현실)의 법칙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듯 작가에게 여행과 비행 상태는 현실세계를 보다 수평적이고 추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의 이면에 반영된 무의식의 흐름을 담아내듯 촬영한 비디오 영상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K3에 전시되는 〈catalyst〉 연작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담아낸 듯한 드로잉과 유사한 요소들이 응집, 거대한 스케일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탄생한 작품이다. 무리조는 종종 이 회화 작업의 제작과정을 “신체의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에 비유한다. 기본적인 도구에만 의존하여 자동적, 직관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 신체의 에너지를 캔버스 위에 축적시킨 결과물이자,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의식(ritual)으로도 설명된다. 그런 점에서 〈catalyst〉 연작은 작품의 완결성보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액션 페인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무리조의 회화작업은 작업 과정의 단순한 파생물이 아니라 전시 공간 너머,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그의 작업을 생성,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K2에서 마주하는 검게 드리워진 캔버스 설치는 다양한 작업들이 공간 안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도록 한다. 전시장을 열린 일종의 경기장이자 무대로 간주하여 관객,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려는 작가에게 있어 특히 주요한 작업이다. 캔버스 천 위에 검은 물감을 여러 겹 채워낸 후 조각 내고 이를 친척, 지인 등 주변 이들과의 협업 하에 새로운 구성과 패턴으로 바느질하여 엮는다. 이는 이후 스튜디오 바닥에 놓인 채 새로운 층을 덧입히거나 재구성되기도 하고, 각종 전시 공간에 설치되어 먼지, 흙, 얼룩 등 시간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유동적인 요소들에 열린 작업으로 지속되어왔다. 마치 피부 혹은 거죽처럼 펼쳐진 어두운 캔버스 군단은 2015년 콜롬비아 국립대학교 미술관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같은 해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관 전면에 거대한 행렬의 깃발로 설치되었고, 2016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17년 샤르자 비엔날레에서도 장소특정적 설치로 선보인 바 있다. 검은 캔버스 천과 함께 설치되는 곡물과 점토가 뒤엉킨 유기적인 형태의 덩어리들은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 그리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비유다.

K2에서 마주하는 무리조의 회화는 2013년부터 지속된 작가의 대표 작업으로, 다양한 크기로 분열된 천 조각들이 하나의 표면으로 재구성되어 패턴, 질감, 기호들이 응집된 혼합물로 드러난다. 이 표면 위에 거칠게 표현한 추상적인 선이 담아내는 자유분방한 에너지는 〈flight〉, 〈catalyst〉 연작과도 유사한 결을 띤다. 마치 다른 시간과 지역의 흔적을 담은 조각보처럼, 작가가 여행하며 경험한 개발도상국가 도시들의 일상 풍경 내에 잠식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잔재를 표상하는 듯한 이미지, 단어, 숫자 등을 재편집한 작업들로 다양한 지역, 역사, 현실의 층위가 한 화면 위에서 교차되고 응집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담아낸다.

적극적으로 의도한 이동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마주하는 작가는 각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분쟁, 사회적 갈등과 정서적, 물리적인 거리감을 형성하고 이로써 일련의 사건들을 객관화 및 추상화한다. 무리조는 제3의 시각으로 현상의 어두운 이면을 포착하고 수평적 유대감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 본다. 국제갤러리에서의 이번 개인전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와 화해의 촉매로 기능하는 예술의 어떠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오스카 무리조만의 함축적인 작업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물리적 제약을 초월함과 동시에,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인지하게 된다. 이때 나는 왠지 어떠한 자격을 부여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시아, 북아프리카, 중남미 등 여러 지역에 나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혹은 그 어떠한 역사와도 관계할 필요 없이, 마치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빚지지 않은 양 말이다. 나에겐 이 사실이 중요하다. 이로써 나는 작업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된다.

– 작가의 말

작가소개
오스카 무리조(b. 1986)는 2007년 영국 런던에 소재한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후, 중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곧 그만두고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그 후 2012년,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버려진 사탕 껍질이나 통조림 라벨 등을 회화에 편입하거나 화려한 컬러들과 병치하여 특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회화로 재탄생시키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노동력에 대한 질문이 전제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회화에 근간을 두면서도, 영상이나 퍼포먼스적 요소를 활용하여 각 전시 환경과 소통하는 역동적인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작가는 ‘캔디가 아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남미에서 유명한 과자회사의 공장(Colombina)을 뉴욕의 한 전시장에 재현한 바 있다. 이주자들을 둘러싼 광범위한 문제와 경제 및 무역의 세계화, 그리고 그에 따른 노동자 이슈 등을 달콤하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반추하도록 하였다.

오스카 무리조는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뮌헨(2017), 프랑스 보르도 현대미술관(2017), 아제르바이잔 바쿠 야라트 현대미술관(2016),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3) 등의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제10회 베를린 비엔날레(2018), 아랍에미리트 샤르자에서 개최된 제13회 샤르자 비엔날레(2017),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등이 있다. 이탈리아 튜린에 소재한 재단 폰다지오네 산드레토 리 리바우덴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미국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벨기에 헨트 스테델릭 현대미술관(S.M.A.K)과 같은 유수의 미술관과 주요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About chief editor

다양한 문화 예술의 ARTNEWS 입니다. 보도 수신 은 editor@artnew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