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로니 혼(Roni Horn) 개인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로니 혼(Roni Horn, b.1955)의 개인전 《Remembered Words》가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국제갤러리 K3에서 열린다. 2007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네 번째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전시명과 동일한 제목의 드로잉 연작 <Remembered Words>를 단독으로 조명한 최초의 개인전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특정 시기에 진행된 해당 연작은 로니 혼의 다른 작품군과 개념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작업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개념적이고도 비평적인 작업을 선보여온 로니 혼은 <Remembered Words>를 비롯해 <Hack Wit>(2013~2015), <Th Rose Prblm>(2015~2016), <Dog’s Chorus>(2016) 등 일련의 드로잉 연작이 작가 본인의 활동에서 매우 근원적이고도 수행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드로잉은 나 스스로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드로잉을 시도하는 이유도 작가로서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심리적 지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지금까지 미술 역사에서 폄하되어 왔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드로잉이야말로 그 자체로 심오한 형식이며 여러 타 장르와도 긴밀히 만난다고 생각했기에, 내 작업의 주요 형식이 될 거라 믿었다. 특히 그 중 <Remembered Words>는 ‘자서전적 풍경화’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명상할 때와 같은 상태에서 기억 속 단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 K3를 채우고 있는 <Remembered Words>는 작가의 말대로 단어의 의미와 기억 간의 미묘한 관계에서 출발한다. 개별작품은 3X3 격자로 배열된 아홉 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모두 동일한 크기의 드로잉은 수채 물감으로 그린 원들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의 원은 격자 패턴을 이루며 바로 아래 쓰인 단어들과 함께 나열되거나 율동감 있게 여기저기 흩어지고 겹쳐진다. 이런 과정은 작가의 ‘기억된 단어’들이 사회, 정치, 인종, 문화 등의 프레임, 주도적 인식과 무의식 속의 자아는 물론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즉 보존된 기억의 표상들이 유영하는 ‘집단의 문체’임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 본인의 잠재의식에 자리한 단어를 자유롭게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Remembered Words>는 미국의 여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이 시도한 실험적인 구문론을 환기시키며, 문학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다시금 증명한다.

<Remembered Words>의 동그라미와 단어의 정돈된 배열은 논리적인 동시에 우발적이며, 무한한 연상 작용을 가능케 한다. 또한 작품 간의 배치 혹은 드로잉 상의 나열 순서를 옮긴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이, 프레임 사이와 전시 공간을 왕래하며 충돌하고 공명한다. 다채로운 색상의 원형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작가만의 색상 사용법과 수채 물감의 매체적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로써 각 단어의 의미와 색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관객들의 시도는 점차 작가와 관객 간의 의식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교차하고 어우러지는 ‘사유의 지점’에 이르게 된다.

<Remembered Words>는 로니 혼의 다른 작품과도 개념적으로 연결된다. 투명한 물웅덩이를 연상시키는 단색의 유리 주조 조각과 세밀하게 자르고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형태와 의미를 재구축한 드로잉 연작 <Hack Wit>(2013~2015)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두 연작은 각각 매체와 언어의 유연성을 전면에 내세워 날씨의 변화 혹은 사물의 변성이 상호작용하며 자아내는 절묘한 우연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서로 물리적 간격을 유지하며 배치된 총 15점의 전시작은 작가의 그리고, 기억하고, 쓰기와 함께 관객의 멀리서 동시에 가까이서 보기의 행위가 수반된 복합적이고 개방적이며 확장 가능한 문화의 어휘(렉시콘, lexicon)을 창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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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로니 혼은 1955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을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조각, 사진, 드로잉 그리고 출판물을 제작하며 각 영역에 대한 작가 고유의 시학을 전개해왔다. 그의 작품은 자연, 정체성, 이원성(二元性)에 천착한 예리하고도 철학적인 질문들과 재료 연구에 기반한다. 로니 혼의 폭넓은 작업 세계는 대상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병치시킴으로써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 다른 매체들 사이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대화를 창출해낸다. 또한 작가는 유동적인 주제에 주목,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반응하는 인간의 지각과 시각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물, 빛, 날씨에 내재하는 연속적인 흐름을 포착함으로써 장소와 사물 간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관심사를 구체화시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나아가 그는 초상 작업을 오브제와 드로잉과 함께 엮어냄으로써 관객과 작품의 유기적 관계, 그리고 시각적 인지와 개인 기억의 잔상효과 사이의 이분법을 비추어 낸다.

로니 혼의 작업은 전세계 다양한 미술관과 기관에서 꾸준히 소개되어왔다. 바젤 바이엘러재단(2016), 바르셀로나 호안미로재단과 마드리드의 라 까이사 포럼(2014), 프랑크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2013-4), 함부르크 쿤스트할레(2011),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2004), 파리 퐁피두센터(2003), 뉴욕 디아 아트센터(2001), 휘트니미술관(2000) 등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2009년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을 시작으로 아비뇽 랑베르컬렉션, 뉴욕 휘트니미술관(2009), 보스턴 ICA(2010)로 이어진 대규모 회고전 《Roni Horn aka Roni Horn》을 가진 바 있다. 로니 혼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컬렉션 및 바젤 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주요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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