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갤러리 개관전,은밀하게 위대하게

2018년 1월 26일 개관하는 을갤러리(대표 김을수)는 오는 26일부터 3월 17일까지 개관 첫 전시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에로티시즘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예술로 승화하는 이근민 작가의 누드 드로잉 또 최근 새롭게 가치 평가되고 있는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의 춘화를 포함한 총 15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시대를 풍미하는 하나의 거대 기조와 도덕적 속박에 구애되지 않는 거침없는 상상력을 갖고서 우리 세계의 특수한 장면을 포착해 내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작가들이다. 을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자신의 화면에 풀어낸 인간의 은밀한 욕구와 그 너머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자 한다.

 

지난 2017년 11월 1일, 뉴욕의 한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걸린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1938년작 ‘꿈꾸는 테레즈 (Therese Dreaming)’를 철거하라는 온라인 청원을 내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청원 운동을 시작한 미아 메릴은 “발튀스는 사춘기 소녀들에 심취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작품은 명백히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 라고 말하며 최근 미국 내 연예계와 정계 인사들의 성추행, 성폭력 등 성범죄 관련 혐의가 끊이지 않고 드러나는 상황에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이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은 관음증을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아 메릴의 주장은 청원 신청 5일 만에 많은 여성운동가와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며 85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예술의 검열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어쩌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적나라한 이미지들 역시 발튀스의 작품과 같이 ‘화가의 예술적 표현이 성적 수위로 검열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과 외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관한 논란을 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변인 케네스 와인이 해당 작품 철거에 뜻이 없음을 밝히며 덧붙인 말에 먼저 주목할 필요성을 느낀다. “최근 논란이 되는 발튀스의 작품을 포함한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단지 오늘날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오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 중요 예술 작품들을 모으고, 연구하고, 보존하며 전시하는 것이 박물관의 임무이다.“ 을갤러리는 시대와 문화를 아울러 오늘날의 우리에게 영감을 예술과 그를 다루는 기관의 역할에 대한 미술관의 입장에 지극한 동조를 표한다. 동시에 오랜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100여년 전과 같은 비난을 받고 있는 성을 다룬 선정적인 작품을 대하는 관객들의 태도와 예술과 윤리라는 오래된 추상적 문제에 의문을 던지며 이번 전시가 2018년 한국에서는 어떠한 논란과 영향을 일으킬지 자못 궁금하다.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와 이소다 코류사이(礒田 湖龍斎) 등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들의 춘화는 그동안 외설적인 그림이라 일컬어지며 오랜 시간 동안 점잖은 미술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여러 재야 학자들과 수집가들에 의해 꾸준히 보존되고 연구되며 최근 그 조형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당시 지배 계층의 높은 수요로 인해 판매 가격이 매우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도 우키요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우키요에 작품 중 가장 탁월한 기술 수준이 적용되어 뛰어난 색채와 구도, 사실성과 상상력 등 모든 조형적인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속 내용을 살펴보면 유명 인물에 대한 이야기나 고전을 야릇한 내용으로 각색해 성적인 장면을 묘사한 삽화를 곁들인 것들이 많으며, 작품 곳곳에 하이쿠와 마네에몬(콩알 사내)이 등장하며 일본 문화 특유의 재미를 더해 적나라하다기 보다는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해학적 요소가 있다. 최근 일본 에이세이 분코 박물관, 독일 부흐하임 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춘화 전시를 선보이며 단순히 포르노 작품으로 치부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춘화만이 가지고 있는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 방식과 그 속에 담긴 당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난 풍속화로서의 가치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스케치 다섯 점 또한 농염한 여성의 누드를 담아내고 있다.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가인 클림트의 현재 위상과는 달리,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정부와 대중들로부터 노골적인 변태적 취향의 화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작가가 열네 명의 사생아를 두고 있으며, 그의 작업실엔 언제나 두 세 명의 모델들이 벌고 벗고 있어 방문객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지며 클림트와 에로티시즘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붙어 다녔다. 평생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는 정작 진정으로 사랑하는 에밀리 플뢰게에는 키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한다. 꽃을 살 돈이 없을 때 종이에 꽃잎의 수만큼 하트를 그려 넣은 뒤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고 적어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에로티시즘의 대가라 불리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에로틱한 신체와 제스처는 그에게 여성은 쾌락의 대상이라기보다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모든 순간을 성실하게 사랑하며 그것들을 화면 속에 풀어내 작가에게 있어 그만의 에로티시즘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암울한 시대를 탈출하는 하나의 희망은 아니었을까.

 

최근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젊은 작가인 이근민은 작가가 오랫동안 앓았던 해리성 장애와 병중에 겪었던 환각과 환청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주로 해체, 먹기, 포스트모던 원숭이, 악몽, 차 멀미와 같이 작가가 경험한 일련의 고통들을 반구상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살구색과 붉은색의 날 것과도 같은 일그러진 형체는 마치 왜곡된 신체 내부 장기를 들여다보는 기괴한 느낌을 준다. 변형되고 훼손된 듯한 신체와 그에서 파생되거나 아무렇게 뭉쳐진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는 그만의 독특한 색감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뜨거운 생기를 내뿜는다. 이근민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인간은 현실 속에서 어떠한 병적 증상 혹은 중후라는 병명적 데이터로 분류되어 취급되는 나약한 자신을 재형상한 것이며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에게 있어 예술 작업 과정은 현실과 비현실, 병듦과 건강 그리고 유무를 나누는 어떠한 이기적인 인간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자 위로이며 동시에 예술적 승화 과정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는 ‘위반 없는 곳에 쾌락은 없다’고 했다. 인간에게 터부시 되고 금기 되는 것을 위반하는 것만큼 짜릿한 쾌락이 있을까? 을갤러리가 마련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익숙하고 친숙했던 예술이 아니라 민망하고 낯설 것이다. 혹자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고 불편한 작품들이 예술사에서 또 우리 역사 속에서 은밀하게 지속되어 온 사실에 주목하며,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불편함을 굳이 꺼내 들어 그 너머에 깃들어있는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위대한 예술적 표현들이 우리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해보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야릇한 본능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예술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이 수백 년 전의 어느 늦은 밤, 누군가가 베갯머리에 숨겨둔 춘화첩을 슬며시 꺼내보며 느꼈을 그 은밀하고도 위대한 성의 미학과 묘한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About Artist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창시자였으며, 빈의 아르누보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가 결성한 빈 분리파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매너리즘에 빠진 미술가 협회에 맞서며 검열에 통과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냈다. 클림트의 작품에는 주로 관능적인 포즈의 여성이 금색 또는 은색이 화려하게 얽힌 패턴과 다양하고 역동적인 색채가 함께 나타난다. 그가 다룬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테마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클림트는 당대의 미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중국, 고대 이집트 등 당시 미술계의 변방에 있던 여러 양식에 대한 실험을 이어왔다. 작가는 실제로 기모노를 직접 디자인해 입기도 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으며 그의 작품 곳곳에 여러 일본 문화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근민 (1982-)

오랫동안 해리성 장애를 앓고 있는 이근민 작가에게 작업은 예술 행위를 넘어 하나의 치유 수단으로써 생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화면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철저하게 그가 환영 또는 환청으로 직접 경험한 것으로 작가가 느꼈을 법한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관찰된 이리저리 분해되고 조합된 신체가 만들어낸 기괴한 이미지는 섬뜩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에게 회화 작업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각의 세계로부터의 탈출구이자 일종의 예술적 승화 과정이며, 본인 스스로도 남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고 이를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을 당당하게 여겨 드러낸다. 이근민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최근 블루메 미술관, 서울대 미술관, 뉴욕의 신갤러리 등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무대의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춘화 (Shunga)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된 풍속화-우키요에의 한 형태로 주로 남녀 간의 적나라한 성행위를 주제로 다룬다. 춘화는 우키요에의 여러 주제 중 당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양식으로, 사회 지배계층 집안에서 어머니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성교육을 목적으로 또는 다산을 기원하는 기복적인 의미로 춘화첩을 물려주기도 했다. 또 춘화가 사악한 기운이나 재앙, 화재를 예방하는 기운이 있다고 믿어 사무라이들이 부적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이 도자기 포장지로 쓰인 우키요에를 마네, 도가 등 친구들에게 보여준 것이 인상파의 발단이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일본의 우케요에와 춘화는 많은 인상파 작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툴르즈 로트텍, 오귀스트 로댕, 파블로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은 평면적이면서도 강렬한 색 사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클림트의 제자 에곤 쉴레는 춘화를 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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