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막_ 박 정 원

1. 전시 개요

전시명 : still life_스틸 라이프
작가명 : 박정원
일정 : 2017.10.14 – 11.3
장소 : 플레이스막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622)
마당에 핀 꽃을 꺾어다가 화병에 꽂는다. 없던 꽃이 생겨나 우리 집 식탁 위 놓이는 순간, 놀랍게 반짝거리는 작은 구역이 만들어진다. 나는 어려서 부터 꽃에 감탄해 본 일이 별로 없다. 그 정교하 고 요상한 생김새는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의 꽃 사랑 때문에 5월부터 늦가을까지 식탁 위 화병은 다양한 꽃들로 내내 채워져 있었고, 정물화는 그로부터 우연히 시작되었다. 방금 꺾어다 놓은 만개한 꽃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곤 한다. 온몸을 벌려 흠결 없이 반 짝이는 꽃에 비해 나의 단조로운 일상은 멋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이 만개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변색되고 죽어갈 것이라 생각하면 이내 언짢고 초조해진다. 너저분한 일상의 물건들 사 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끼니를 챙기는 삶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묵묵히 흐르고 있다. 특별한 의미 없 이도 일상의 낱장은 잘도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집 밥솥과 조미료통, 금새 쌓여버리는 설거지 그릇 의 뿌연 물, 부엌의 지루한 풍경들 사이에 활짝 핀 꽃병은 그야말로 낯설다.

2. 외출하고 돌아와서 거짓말 같이 시들어버린 꽃을 발견하면 놀라곤 했다. 나보다 작은 단위의 삶을 살다가는 꽃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심히 흐른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꽃의 생, 그 틈에 빠 르게 끼어들어서 흐르는 순간을 낚아채고 싶었고,그림으로 그리게 되었다. 13점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화가가 일상의 관찰자가 되어서 그려낸 시 간의 기록이다. 이는 흘러가는 시간을 저장하고자 그림을 그리는 모든 화가들의 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3. 지난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비일상적 순간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발견 앞에 멈추어 의미를 곱 씹고 그림이라는 물질로 변화시키는 일이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변색된 장미 꽃잎의 얇은 주름을 볼 때 느끼는 안타까움과 고개를 떨군 백합의 커다란 머리가 급기야 바닥으로 툭하고 고꾸라질 때 보여 지는 절박한 균형감은 애초에 만발 했던 꽃을 보며 느끼던 감탄고는 다른, 몸시 시적인 순간을 만 들어 낸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타임라인에 드라마가 있듯, 식탁위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화병의 시간에도 감정의 흐름이 있음을 느낀다. 무대 위, 한명의 배우가 나지막히 읊조리는 독백 과도같이 화병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는 꽃의 몸짓은 고요하지만 극적이다.

4. 27점의 목탄 드로잉<춤>은 춤추는 커플들의 정지된 표정을 그린 그림이다. <춤>드로잉은 익숙한 대상을 통해 드러나는 비일상적 감흥의 스틸컷이다. 막 춤이든, 우아한 춤이든간에 말 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사회화된 단단한 외투 속에 감춰진 사람의 연약한 감정, 그 맨살 을 느끼게 된다. 사교댄스 커뮤니티에 올라온 댄스파티의 사진들을 소스로 작업을 하는데, 그 모습 들은 모두 친숙한 동시대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탱고에 몸을 맡기고 파트너와 손을 맞잡은 그들의 얼굴표정 만큼은 어떤 모험을 감행하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있다. 그리고 댄스 커플의 도취된 표정은 너무 낯설고 묘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소외감 마저 들게한다. 그들의 얼굴 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비일상적 표현들이 흥분인지, 낙담인지, 단념인지, 정념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눈 깜빡거리는 속도로 현현하고 사라지는 타인의 감정이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그들 의 고유한 생김새, 교차된 얼굴과 얼굴 사이의 스치듯 지나가는 표정, 몸과 몸의 간격과 살의 깊이 감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결코가 닿을 수 없는타인의 감정을 잠깐이나마 만졌다는 기 분이 들도록 했다. 목탄으로 스케치하듯 그린 그들의 초상화는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인의 날 것 같은 표정을 훔쳐보고 나의 마음과 꿰어낸 ‘감정의 공집합’ 같은 것이다.

5. 언제나 내 생각을 넘어서고, 벗어나버리는 불가항력적인 세계는 두렵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죽는 것이 무섭고, 늙는 것이 겁난다. 내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타인의 속내와 감정, 그리고 나 조차도 알 수없는 내 마음 역시 늘 불안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 창작은 이렇게 불안 하고 불편한 것을 통해 시작되었다. 죽어가는 시간을 통해 나는 존재의 죽음을 엿보고, 춤추는 남 녀의 표정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감정을 가늠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화가니까 이것들을 그리고 싶었다. 결국 파악할 수 없었던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들은 만지고 볼 수 있는 그림이 되었 다. 거대하고 모호하기만 한 세상이 창작을 통해 아주 조금은 알만한 것으로 변모된다고 느낀다. 박정원朴 正 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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