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그룹전 《Gridded Currents》

국제갤러리는 2017년 7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전 세계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4인의 국내외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전 《Gridded Currents》을 마련했다. 국제갤러리는 2013년 《기울어진 각운들》 개최를 시작으로, 새로운 작가군을 형성하고 전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취지의 기획전을 선보여 왔다. 그 일환으로 올해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비평가로 활동하는 김현진을 초빙해 각기 다른 문화적, 지역적 배경을 갖고 있는 4인의 작가 찰스 림 이 용, 니나 카넬, 루노 라고마르시노, 김아영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바다, 광물 등의 자연을 ‘경계의 설정과 강화’라는 서구적 근대성에 의해 통제 및 운용되는 ‘격자에 갇힌 바다(Gridded Currents)’로 은유하며, 특히 바다를 ‘중립적 풍경’이 아닌 식민역사와 국경, 자본주의적 공간으로 접근하는 비평적인 작업들을 선보인다. 총 15점의 오브제 설치, 영상, 평면 및 벽면 설치 작업들은 오늘날 대자연의 풍경 속에 내재되어 있으나 감지하기 어려운 제국주의 역사의 헤게모니와 수탈의 역사, 국가주의와 지배적 미디어 환경의 실재 등 거대한 구조들을 포착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오늘날 바다 공간을 정복한 현대성(modernity)의 양상을 직시한다.
자연은 회화의 역사 속에서 숭고한 재현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측정하며, 근대성의 격자 구조의 자연 통제가 본격화 되기 시작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작가들의 화폭을 여전히 지배했던 것은 산이나 숲, 정물을 그리는 형태적 실험이나 추상화를 통한 자연의 재현 방식이었다. 바다는 특히 대상이 형태가 유동적이고, 파도라는 역동적 움직임을 가진 공간이기에 서정주의, 심지어는 키치적 혹은 대중적 취향을 위한 소재로도 오랫동안 등장해왔다. 바다의 파도가 거칠수록 그에 대항하는 인간의 도전의식과 숭고함은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위대함을 투사하는 대상이었는데, 파도 치는 바다의 이미지에는 이미 인간의 자연 통제와 그에 대한 욕망이 오랜 시간 투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바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아름다운 파도와 태양, 혹은 풍랑이 이는 공간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작가들의 시선은 그 조류의 운동을 묘사하려는 오랜 회화적 재현의 욕망에 갇혀 있지도 않다. 동시대 미술에서 바다나 대양이라는 공간을 글로벌 자본주의의 물류 유통의 핵심 공간으로서 접근했던 작업의 기원은 알란 세큘라(1951-2013)의 〈Fish Story〉(1995)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바다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행위를 실어 나르던 역사 속의 공간으로 반성되며 이번 전시에서 국가주의적 경쟁과 국경 공간의 모습으로 그 첨예함을 드러낸다. 또한 검은 황금의 자본주의가 흐르고 선 없는 세상을 위한 미디어 인프라로서의 공간이다. 이 전시에서 주목하는 4인의 작가들은 드넓은 수평선의 평화로운 바다가 이렇듯 근대적 경계 설정에 구속된 ‘격자에 갇힌 바다’(Gridded Currents)임을, 지도 위의 영토이자 자본의 흐름을 생산하는 공간이며, 데이터화 된 세상을 생산하는 기반 공간임을 일깨운다. 즉 이들 작업은 더 큰 구조에 접근하도록 안내하는 중요한 파편들과 같으며 결국 전시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바다 공간을 정복한 현대성(modernity)의 모습들과 그 양상들이다. 작가들의 관심은 조류 아래 채 몸을 숨겨 잘 포착되지 않는 오늘날 세상의 기반과 구조에 그 시선을 짙게 드리우면서 이러한 비판적 인식 구조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미학적 우회 경로를 제공한다.
김아영, <깊은 애도 Grand deuil (Deep Mourning) (detail)>, 2016
Digital print
김아영은 지난 몇 년간 바다와 사막의 자원, 동시대의 황금인 석유와 이 석유를 둘러싼 중동사에 접근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중동의 거시사와 한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중동특수에 관한 이슈, 그리고 그 역사 내 개인들의 미시사를 교차시킨 후, 이러한 텍스트들을 기반으로 알고리듬을 통해 재배열해 파편화시킨 후, 스토리를 벗어나 해체적이고 파편적인 말들의 조합, 교차, 충돌과 텐션 등으로 전환한 후, 작곡가 김희라와의 협업을 통해 마치 실험적인 오페라와 같은 곡을 완성한 후 비정형적인 사운드들이 충돌하는 실험적인 합창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실현했다. 특히 작가는 석유를 정제할 때 잔류물로 얻어지는 고체나 반고체의 검은색이나 흑갈색 탄화수소 화합물, 즉 아스팔트의 원료인 역청이라는 재료를 둘러싼 신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역청은 석유가 존재하기 이전에도 나무 등을 통해 얻어져 성경에서 방주의 안팎을 칠하는 재료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아영은 현대문명사로 이어지는 역청의 역사를 노래하고 지휘하는 손을 보여주는 비디오 <무한 반복의 역청 지휘>(2014/2016)와 더불어 물, 항해, 홍수, 방주 등의 역사적 재난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업들이 선보였던 지난해 팔레 드 도쿄 개인전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의 작업의 일부를 국제갤러리 공간에 맞게 재 해석해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 시리즈는 인류 역사에서 발견되는 재난사고에서 모티브를 얻고 있으며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 내외부의 이미지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경전 등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대홍수와 방주 서사와 관련된 이미지를 뒤섞어 콜라주 형식으로, 나아가 이 외에 지난해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 팔레 가르니에에서 시연한 퍼포먼스를 담은 비디오 작업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2016), 대홍수 서사시에 관한 연구과정을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표현한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를 위한 지도>(2016) 등으로 선보인다. 작가가 몇 년간 지속적으로 다루어 온 역청이라는 재료는 방주, 역사적 대홍수의 재난의 서사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작업을 통해 오늘날 석유 지정학과 자원패권을 둘러싼 자본, 종교, 복잡한 문명사의 근간을 더불어 시사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루노 라고마르시노, <Sea Grammar (detail)>, 2015
80 perforated images in a slide projection carousel
이미 15세기말부터 16세기 초, 크리스토퍼 콜롬부스의 항해는 금의 대륙을 찾기 위한 자본으로 직결되는 자원 확보를 위한 행위였고, 바다는 그러한 신대륙의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국주의자들의 도전에 부조리한 환상과 신화를 부여하는 공간이었다. 1층 전시장 코너에 설치된 세 작업은 이러한 해양을 지배해 온 역사와 근대적 구조의 바탕에 존재하는 제국주의적 탐욕, 나아가 그 괴물성을 암시한다. 라틴어 제목의 <우리의 바다, 괴물의 바다(Mare Nostrum Mare Mostrum)>(2015)는 대형 커튼에 식민지 항해선이 대왕문어와 같은 괴물과 싸우는 신화적 이미지를 프린트한 작업이다. 1층 오른편 코너에 설치되는 금색의 메탈을 세로로 부착해 장식한 미니멀한 작품 <Violent Corner>(2017)와 ‘최초의 발상의 전환’이라는 콜롬부스에 대한 신화화에 동원된 유명한 일화 ‘콜롬부스의 달걀’을 보여주는 삽화를 차용한 <Europe Is Impossible to Defend>(2014) 는 금을 찾아 나섰던 신대륙 발견 신화의 그 신화의 부조리한 재생산 속에서 반복되는 유럽중심주의와 그 폭력성을 암시한다.
2층 공간에는 지중해와 관련된 작가의 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바다 문법(Sea Grammer)>(2015)은 80 장의 슬라이드로 이루어진 프로젝션 작업으로, 한 장씩 슬라이드가 넘어가면서 지중해 바다 이미지에 구멍이 증가하고 결국에는 바다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빛만 화면에 남겨지게 된다. 그의 바다는 우리가 즐기는 해변이나 도시를 둘러싼 폭력적 역사, 난민과 같은 인권적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경고하듯, 평화롭고 아름답게 시작되지만 사실상 불안하고 구멍 난 공간이다. 유럽 제국의 시민들에게 목숨을 걸고 도전하면 기회의 공간이었던 바다는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세워진 높은 국경의 공간이 되어 난민들에게는 그저 헐벗은 자들의 사선(死線)의 공간이 되고 있다. 특히 지중해 바다는 지난 몇 년간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에서 증가한 대규모의 난민들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해역이 되어왔다. 슬라이드 넘어가는 무심하고 규칙적인 기계소리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침묵을 더더욱 강하게 시사한다.

니나 카넬, <Shedding Sheaths (H) (detail)>, 2015
Fibre-optic cable sheaths, concrete
니나 카넬의 작업은 조각의 정태적(靜態) 상태, 그리고 자연의 현상에서 발견되는 동태적(動態) 변화를 동시에 담아낸 ‘조각적 상태(condition)’로써 보여진다. 전통적인 ‘조각’의 범주를 확장시켰다 평가 받는 그의 작업은 다양한 재료들의 물질적 결합을 통해, 인간의 눈에 포착되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와 그 운동성이 잠재한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작가는 지난 몇 년 간 오늘날의 무선인터넷과 같이 와이어리스의 세계의 기반이 되는 지하 매설 케이블에 관심을 두고, 프랑스 리옹과 서울 근교에서 재활용 케이블 덩어리들을 수집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디지털 환경은 갈수록 선이 없는(wireless) 상태를 지향하지만 대륙 사이의 대양이나 대륙 내 지하에는 보다 많은 양의 케이블의 증가라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존재한다. 매우 두껍고 육중한 지하 매설 케이블의 단면을 하나의 조각으로 등장시켰던 초기의 방식에서 작가는 녹아 내려 형태가 변화한 상태 속에 잠재한 피복의 미래를 한편 상기시킨다. 케이블의 심지가 빠지고 껍질만 남은 피복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모양이 변형된 이 덩어리들은 ‘정보’의 송수신이라는 비물질적 거리를 물리적으로 환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상태가 끊임없이 또 다른 상태로 전이하는 플라스틱 피복 물질에 잠재한 순환을 드러낸다.

 

찰스 림 이 용, <SEA STATE 6: phase 1>, 2015
Single-channel HD digital video
싱가포르 출신의 작가 찰스 림 이 용은 과거 국가대표 요트선수 신분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색적인 이력을 지녔다. 이는 그로 하여금 민첩하고 예민한 감각과 바다 환경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갖게 하였고, 작가는 영화, 설치, 소리, 대화, 텍스트, 그림 및 사진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2005년부터 바다에 대한 가시적 비가시적 렌즈를 통해 싱가포르의 정치, 생물학적 및 심적 등고선을 탐구하는 <SEA STATE(해황(海況))>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싱가포르의 해상 지리 및 역사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류가 자연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나 자연과 인공, 육지와 해양 사이의 상호관계를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서 찰스 림 이 용은 싱가포르 북동쪽 경계지역을 따라 세워진 바다 장벽을 기록한 사진작업 <SEA STATE 4: line in the chart>(2008), 간척 영토를 격자로 잘라낸 <SEA STATE 8: The Grid>(2014) 을 포함한 ‘SEA STATE’ 시리즈 작업 5점을 전시한다. 그는 싱가포르의 국가주의가 바다를 대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한 탐구, 즉 바다를 ‘확장’ 혹은 ‘열린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마치 ‘벽’ 과 같은 ‘단절’로써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바다를 메워 간척하는 영토 확장 행위에 주목한다. 자유로운 조류의 흐름을 타고 글로벌 물류 교역이 발생하는 흐름과 확장의 공간은 강력한 국가의 경계가 발생하는 분리와 단절, 물리적 정복의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오늘날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의 바다와 섬들을 둘러싼 갈등 상황을 보더라도 바다는 오늘날 극도로 첨예한 국가주의적 경쟁 공간이며 정복해야 할 영토이다.

 

 

큐레이터 소개
김현진은 현재 동시대 시각예술 관련 전시기획, 비평 및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 관장/전시감독 (2014- 2015) 및 2008년 제 7회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의 공동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그 밖에 일민미술관의 학예실장, 네덜란드의 반아베 미술관의 게스트 큐레이터, 아트선재센터 학예연구원 등으로 일했고, 주요 전시로는 《두 세마리 호랑이 전(2 or 3 Tigers)》(세계문화의 집, 베를린, 2017), 《Two Hours》 (Tina Kim Gallery, 뉴욕, 2016), 《Satin Ions》, 《남화연-시간의 기술》(아르코미술관, 서울, 2015), 《Tradition (Un)Realized》(아르코미술관, 서울, 2014), 《탁월한 협업자들》(일민미술관, 서울, 2013), 《시선의 반격》(L’appartement 22, Rabat, 2010), 《우발적 공동체》(계원예술대학교 갤러리27, 의왕시, 2007), 《십 년만 부탁합니다-이주요 위탁 프로젝트》(계원예술대학교 갤러리27, 의왕시, 2007), 《사동 30-양혜규》(인천 사동 폐가, 2007), 《Plug-In#3-밝힐 수 없는 군중들》(반아베 미술관, Eindhoven, 2006) 등이 있다. 또한 2009년 이후로, 김성환 작가의 <In the Room 3>(Performa, 뉴욕, 2009), 정은영 작가의 <Off-Stage /Masterclass>(문화역 서울 284, 페스티벌 봄, 서울, 2012-2013), 그리고 이주요 작가의 <십 년 Ten Years> (문래예술공장, 남산 아트센터, 서울, 2016-2017) 등,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퍼포먼스 작품을 기획, 제작해 오고 있다. 또한 저서로는 『정서영-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현실문화, 서울, 2012), 『가오시창- The Other There』 (Timezone8, 베이징, 2009), 『돌로레스 지니와 후안 마이다간』(Sala Rekade, 빌바오, 2007) 등이 있다.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프로그램 자문위원(2014-2016)을 역임했으며, 현재 홍콩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의 자문위원이다.

About chief editor

다양한 문화 예술의 ARTNEWS 입니다.
보도 수신 은 editor@artnew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