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 MUSEUM,손선경 개인전 ⟪희미한 현재⟫

OCI미술관은 올해로 여덟 해 째를 맞는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OCI YOUNG CREATIVES’의 2017년도 첫 전시로 손선경 개인전 ⟪희미한 현재⟫를 개최한다. 자극과 현란으로 범벅된 시대 한가운데에서, 극도로 절제된 표현이 오히려 돋보인다. 나타내고자 목표한 바에 무던히도 충실한 10여 점의 디지털 드로잉 영상 작업을 통해 ‘무덤덤한 반복의 미학’에 눈을 돌린다.

 

대부분의 삶은 사실 반복이 주요 콘텐츠이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형편은 도통 변함이 없고, 일상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때로는 괴로운 상황의 연속, 타개 불능, 희망이 보이지 않음, 그것의 지속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보호를 위한 일종의 면역체계를 구축하듯, 단순함, 뻔함, 지루함, 진부함은 그렇게 운율, 안정감, 패턴, 규칙으로 점차 수렴하고, 어느 순간 연습, 수양, 수련의 하나로 입지를 굳힌다. 그쯤 되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적 방법’이라고 명명함직하다.

 

손선경은 삶을 채우는 이러한 반복의 승화, 반복의 미학에 시선을 맞추었다. 반복이 가진 수많은 페이지와 다양한 얼굴을 되새길 수 있도록 반복의 움직임과 소리로 가득 찬 방을 꾸미고, 반복으로 빽빽한 플립 북 작업을 선보인다.

 

반복되는 사건은 다양하면서도 그 양상은 간단하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탁자만큼이나 긴 기다림을 반복하는 몹시 정적인 것<Long Waiting>에서부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Fase>, (테마가 이미 ‘반복’인)마트로시카 인형을 행위로 형상화해 속을 꺼내고 또 꺼내는 동작과 개념의 협치 반복<Matriochka>, 또 공간을 타넘고<Ball Boy> 공을 치는<Tennis Girl> 비교적 동적인 연출에 이르기도 한다. 또한 한 눈에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그 모든 서사는 단출하다.

 

내용만큼 시각적으로도 간결하다. 감정 요소를 배제한 가장 단출한 모양새와, 극도로 생략해 숫제 암시에 가까운 공간 표현, 무한 반복을 적나라하게 표방하는 동작과 압축한 줄거리로 연출을 최소화한다.

 

화선지를 지나는 먹선은 강약 농담 윤갈의 변화로 다양한 느낌을 낸다. 반면, 그의 작업은 디지털 드로잉으로 이루어진다. 흰 픽셀을 헤집으며 균질하게 뻗어나가는 검은 궤적은 몹시 중립적 중성적이다. 인물이나 사물의 표현은 그렇게 강약 없는 ‘디지털 백묘白描’ 로만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Long Waiting>에 등장하는 탁자는 마치 오선지처럼 균일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의 강약과 굴곡은 주제나 동작 못지않게 일정하며 무덤덤하고, 화면은 보다 편평해진다. 색조는 회색조(gray scale)도 아니고, 마치 도장을 파듯, 1비트 비트맵(bitmap)이나 다름없는 흑백 2계조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검정 머리, 흰 셔츠, 검정 바지, 흰 신발’과 같은 식이다. 묘사를 극도로 배제하고 색상과 형태를 단순화하여 형상의 지각에 집중한다. 색과 형태를 한정하거나 혹은 날려 버린다기보단, 감상자에게 재량을 넘긴다 해야 적절할 것이다.

 

공간 역시 최소한의 단서만으로 ‘암시’한다. 창문은 그저 공중에 떠 있는 네모로 대표된다. 동양화로 시작한 작업 내력에 미니멀리즘을 향한 관심이 접목되어 자연스레 발현한 형질이다. 극도로 축약, 생략된 공간 표현은 최소한 두 가지 효과를 동반한다.

우선, 형상과 움직임을 향한 주목을 극대화하고 주제의식의 잔상을 유지한다. 동작의 반복에서 시선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다. 또한 영상 속 공간만큼이나 단출한, 오직 반복밖에 없는, 반복으로 가득 찬 그의 방은 곤충의 겹눈처럼 색상을 배제하고 움직임의 감지를 최적화한 화면 조합을 물리적으로 실현한 공간이다.

여백 속 공간을 무한히 짐작 혹은 가정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함으로 얻는, 적극적인 상상력의 견인이 그 두 번째이다. 과감한 생략은 반향으로 심리적인 드로잉을 유도하고, 그 결과 여백은 오히려 감상자 스스로 구체화해보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비로소 네모는 창문이기도 하고, 현실의 벽을 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각적인 간결로 단순성을 극복하는 셈이다.

 

<Jumpings>등 영상 다수에는 주로 소년 소녀의 형상으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그나마 반복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다. 인물의 표정은 한결같이 극도로 절제되었다. 점 두 개로 표현된 눈 이외의 별다른 단서가 없어 무덤덤하게 보인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표정과 몸짓은, 이도저도 아닌 처지로 하던 것을 반복할 뿐인, 좁게는 젊은 세대, 넓게는 현대에 흩뿌려진 인간 개개인의 신세와 점차 박자를 함께한다. 그들의 무한 반복 동작은 쉽게 심리적 박자를 맞출 수 있고, 이윽고 다음 동작도 쉽게 예측 가능하다. 익숙한 미래가 반복된다.

 

등장인물 일부의 모델은 작가 자신이다. 작업 역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젊은 작가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묵묵히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작업과 수양의 경계는 무뎌지고 자의든 타의든 반복의 승화에 이미 동참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 역시 화면 속 젊은이들 틈바구니에 그렇게 투영된다.

영상은 강렬한 시간성이 개입되는 매체이자 형식이다. 그러나 끝없이 되풀이되는 동작과 인물들의 무미건조한 얼굴은 행위 전후가 무색하게 일관적이다. 심지어 <Fase>등 몇몇 작업은 전후 관계 자체를 모호하게 연출한다. ‘행위 이전인가? 이후인가?’가 불분명 혹은 무의미해지는 심리적 지점에 다다르고, 전시 제목《희미한 현재》의 의미와 박자를 좀 더 분명히 깨닫는다. 미래는 현재의 반복이고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며, 그 경계는 끝없이 희미해진다. 서사에 강한 영상의 특성을 역이용해 서사를 극복하고 있다.

 

 

 

이에 더해, 끝없이 공을 치고<Golf Boy>, 이 잔에서 저 잔으로 물을 거듭 옮겨 담는<Laputa> 등 등장인물의 행동 역시 절제, 축약, 반복의 색을 띄어, 형상이나 표현 방식과 그 궤를 함께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단순하고 지겨워 보이던 반복.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반복으로 가득하다면, 그나마 할 게 그 반복뿐이라면, 깊고 다양한 맛이 나올 때까지 반복을 곱씹어 보는 것도 즐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손선경 개인전 《희미한 현재》는 반복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유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는 말처럼, 소반 위 단출한 삼첩반상에서, 스스로 수십 가지 산해진미를 찾아 먹는 전시라 하겠다.

 

 

작가 약력

손선경 (Son Seonkyung, 1983~)

sonsunk@gmail.com

www.sonsu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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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2013 University Paris VIII, MA in Contemporary art and New media 석사, 파리, 프랑스

2007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학사, 서울

 

개인전

2017 《희미한 현재》, OCI미술관, 서울

2014 《Dans l’ombre des choses ordinaires》,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단체전

2013 《Demeure(s): histoire – mémoire》, Conciergerie, The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 파리, 프랑스

2012 《Qui sont les animaux?》, La nuit européenne des Musées 2012, Musée de la Chasse et de la Nature(사냥과 자연 박술관), 파리, 프랑스

2011 《Once it was》, CSP111 Art Space, 서울

《Sakura Twilight》, Airy gallery, 야마나시, 일본

《Entrelacer》, Tapisserie gallery(대안공간), 파리, 프랑스

2009 《The chromatic Issue, Paris/Atlantic fall 2009》, AUP, 파리, 프랑스

2006 《601 artbook project》, 601Gallery, 서울

 

수상 / 기타

2016 2017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서울

2014 2014-2015 주목할만한 작가,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2013 《Demeure(s): histoire – mémoire》 전시 선정, Conciergerie, 파리, 프랑스

2012 《Qui sont les animaux?》, La nuit européenne des Musées 2012 프로젝션

2009 The chromatic Issue, Paris/Atlantic fall 2009 출판 선정, AUP student media, 파리, 프랑스

2006 601 artbook project 2006 아트북 디자인 최우수상, 601비상, 서울

관람 안내
주최 및 주관 OCI미술관
전시기간 2017. 7. 13 ~ 8. 5 (24일 간)
장 소 OCI미술관 1층 전시실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 (03144)

Tel. 02-734-0440 Fax. 02-734-0439

www.ocimuseum.org

관람시간 화, 목, 금

일, 월

10:00 ~ 18:00

10:00 ~ 21:00

휴관

 

 

Artist Talk

전시 관련 행사

일 시 2017. 7. 26. (수) 19:00
장 소 OCI미술관
참여작가, 평론가 손선경, 전혜림 / 김정현, 윤원화
문 의 02-734-0440

kyk@oci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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