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커넥트 1:스틸 액츠» 전시회 개최

 

아트선재센터, «커넥트 1:스틸 액츠» 전시회 개최

–  8월 27일~11월 20일, 김소라, 이불, 정서영 작가 작품 전시
–  지난 20여 년간 아트선재센터의 여정을 현재화하려는 시도의 기획
–  아트선재센터의1998년, 2000년, 2004년 전시를 재조명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논의
–  2015년 말 시작된 건물 리노베이션 일부 마치고 첫 전시회 열어

아트선재센터는 2016년 8월 2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커넥트 1: 스틸 액츠(Connect 1: Still Acts)»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역사와 소장작품에 대한 연구인 ‘커넥트’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김소라, 이불, 정서영 그리고 뮤지움 그룹 작가들이 참여한다.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 본관에서 개최되는 동 전시회는 1995년 아트선재센터의 옛 터에서 열린 첫 전시 «싹»에서 출발하여 1998년 정식 개관 이후 현재까지 20여 년간 아트선재센터의 여정을 현재화 하려는 시도로 기획된 «커넥트(Connect)»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회다. «커넥트 1: 스틸 액츠»는 세 명의 작가 개인전을 통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였던 활동을 살펴본다. 아트선재센터는 개관 이래 미술관 시설 보수를 위해 두 차례 휴관하였는데, 첫 번째는 2005년부터 2006년 가을까지이고, 두 번째는 2015년 겨울부터 2016년 여름까지이다. 그 첫 번째 ‘정지’ 이전의 시기를 다루고자 기획된 «커넥트 1: 스틸 액츠»는 개인전을 중심으로 작업 커미션을 통해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을 소개하고 소장하는 일을 진행해 온 아트선재센터의 활동을 돌아본다.

«커넥트 1: 스틸 액츠»에서는 김소라, 이불, 그리고 정서영, 세 작가의 전시가 아트선재센터 1층부터 3층까지 각층에서 열린다. 아트선재센터 1층에는 2004년 «안타르티카»에서 선보였던 김소라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2004)가 새롭게 구현되며 이에 따른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진행된다. 2층에는 2000년 정서영의 개인전 «전망대»에서 보여졌던 세 개의 작업, <전망대>(1999), <꽃>(1999), <수위실>(2000)이 그대로 놓이는 한편 새로운 작업이 함께 보여진다. 3층에는 1998년 아트선재센터의 첫 번째 개인전 «이불»에서 보여졌던 <사이보그> 시리즈(1998)와 90년대 이후 미술관에서 전시되기 어려웠던 <장엄한 광채>(2016)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설치된다. 그 외에도 80년대 말에 이불 작가가 소속되어 활동했던 ‘뮤지움’ 그룹의 강홍구, 고낙범, 나카무라 마사토, 샌정(정승), 세스 프랭클린 스나이더 등의 작업을 포함시킴으로써 초기 작업의 컨텍스트를 드러내고 앞으로 있을 ‘뮤지움’ 전시의 예고편을 마련한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은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 외에도 각기 그 시대의 동시대성을 고민하고 저마다의 미학적 언어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던 작가들이다. 이들의 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까지의 주요 작업들을 다시금 살펴보는 본 전시는,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과거의 작업과 전시를 그대로 재현하고 화석화하기 보다는 새로운 읽기와 재맥락화로 현재화하고 또 다른 미래의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

 

작가 소개
김소라(1965년, 서울 출생)는 서울대학교와 파리 국립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개인전으로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6), «Three Foot Walking»(코펜하겐 쿤스트할 샤를로테보르그, 2013), «Abstract Walking»(아트선재센터, 2012), 김소라 개인전(아뜰리에 에르메스, 2010) 등이 있고, «Once is Not Enough»(시청각, 2014), «Nouvelles Vagues»(팔레드도쿄, 2013), «플레이타임»(문화역서울 284, 2012), «불가능한 풍경»(플라토, 201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소라는 개념적 작업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사람들이 내재된 사회적 코드와 행동수칙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날카롭지만 재치 있는 예술적 관여를 통해 관계 맺기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볼 공간을 열어낸다.

이불(1964년, 서울 출생)은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뉴욕 현대미술관(1997), 뉴욕 뉴 뮤지엄(2002), 파리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2007–2008), 도쿄 모리미술관(2012), 무담 룩셈부르크-그랑 뒤 장 현대미술관(2013–2014), 버밍엄 아이콘 미술관(2014), 국립현대미술관(2014–2015) 등 세계 정상급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99년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및 하랄트 제만(Herald Szeemann)이 기획한 본전시에 동시에 참여하여 특별상을 받았으며, 1998년에는 휴고보스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고, 2014년 제 10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눈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미술계를 선두하는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한 이불의 작업은 날카로운 사회비판과 역사의식, 유토피아에 관한 인본주의적 탐구 속에 개인적 내러티브를 투영시킨다. 강렬하고 파격적인 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조각, 설치, 회화, 드로잉, 그리고 영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하여 고유의 색채와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정서영(1964년, 서울 출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슈트트가르트 미술대학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바덴 뷔템베르크주 예술재단 지원금과 예술가 지원금, 김세중 청년조각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일민 미술관, 2013), «사과 vs. 바나나»(현대문화센터 모델하우스, 2011),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LIG아트홀, 2010), «괴물의 지도, 15분»(갤러리 플랜트, 2009), «책상 윗면에는 머리가 작은 일반못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사못을 사용하지 마십시오»(아뜰리에 에르메스, 2007), «모닥불을 거기에 내려 놓으시오»(독일 프랑크푸르트 포르티쿠스, 2005)등이 있다 또한, 그룹전으로는 «제4회 광주비엔날레» (2002),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2003),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2008), «카운트다운»(문화역 서울 284, 2011), «덕수궁프로젝트»(덕수궁미술관/ 덕수궁 정관헌, 2012), «플레이타임 – 에피스테메의 대기실»(문화역 서울 284, 201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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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장엄한 광채, 2016

«커넥트 1: 스틸 액츠» 전시 전경, 2016

<장엄한 광채(Majestic Splendor)>는 구슬과 스팽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생선을 마일라백에 담아 전시하고 전시 기간 동안 방치함으로써 서서히 부패해 가는 생선의 모습과 냄새를 제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1991년 자하문갤러리에서 처음 발표되어, 1993년 덕원 미술관 «성형의 봄»展, 1995년 아트선재센터 «싹»展, 그리고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 및 제 4회 리옹비엔날레 등에서 전시된 이후 미술관에서 전시될 기회가 없다가 20년 만에 선보이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입구 벽면에 98개의 마일라 백에 생선들이 각각 한 마리씩 넣어져 일정한 간격으로 층층이 걸리고 전체가 비닐로 뒤덮여 있다.

 

생선은 여성을 상징화하는 생물로 나타나는데, 특히 작가는 매우 아름답고 절개가 굳었다는 백제 설화 속의 도미부인을 암시하는 의미에서 생선 중에서도 도미를 주로 이 작업에 사용했다. 또 한편으로는 생선을 장식한 구슬과 스팽글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여성 노동자들의 가내 수공업을 떠올리게 하며, 더욱이 작가의 유년기에 정치범이었던 부모님으로 인해 도피 생활을 해야 했던 가족들의 생계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친밀한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물고기에 바늘을 꽂아 스팽글을 수놓는 행위 그 자체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스테레오타입까지도 일순간에 훼손 시킬 수 있는 가학적인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장엄한 광채>가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시간이 서서히 경과함에 따라 죽은 물고기가 썩어 들어가 체액이 흘러나오고 비린내가 악취로 변하는 때이다. 시각중심주의의 미술사에서 추방 당했던 또 다른 감각인 후각을 불러들인 이 작품은 시각예술에서의 전통적인 위계를 교란시키고자 한다. 이불은 1998년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rirch Obrist)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업의 제작 의도를 “재현과 관련된 개념, 또 그것과 시각을 특권적으로 보는 지배적 미학의 원리와의 관계이며, 어떻게 이러한 (다른 감각기관에 대한) 시각의 특권화가 이루어졌는가” 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최고의 모더니스트 기관인 뉴욕 현대미술관이 그의 작업을 철거한 일은 이 작업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반증해주는 일화로 읽힌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의 ‘프로젝트’ 전시에 초대된 이불은 미술관의 요구에 따라 냄새를 최대한 방지하고자 특수 냉장고, 탈취제, ‘오리엔탈리티’와 관련된 이름의 향수 등을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해져가는 썩는 냄새 때문에 미술관은 작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오프닝 직전에 작품을 철거하게 된다. <장엄한 광채>는 순수성으로 무장한 모더니즘의 성역을 오염시킨 사례로서 그간 배제되고 억압되어 왔던 또 다른 미술사를 새롭게 써나갈 길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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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낙범, <마네킹>, 1993

«커넥트 1: 스틸 액츠» 전시 전경, 2016

마네킹은 인간의 외모에 관한 추상적 정보의 코드로부터 기능적으로 복제된 플라스틱 물질이다. 그 형상은 마치 유기적인 육체를 얼려놓은 듯이 보이는데, 그 얼어있는 순간은 죽음을 연상시켜 주기도 한다. 즉 그 느낌은 통상 그로테스크란 언어로 말해지며, 그로테스크란 어떤 대상이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의 착각 속에서 받는 혼돈스런 느낌인 것이다. (……)

궁극적으로 이러한 표현은 무성적 물질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에의 집착이 유성적인 대상으로의 착각현상인 일종의 도착적 심리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얘기될 수 있는 이러한 과정 속에 네크로필리아적인 심리상태의 부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네크로필리아란 죽음에의 병적인 애착을 말하는 심리학의 용어이다. (……) 그러므로 여기에 표현된 마네킹 이미지는 말하자면 죽음에의 욕구를 보여주는 도상, 즉 이콘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네킹 이미지는 부재를 위한 즉 모노크롬의 공간 안에서 부재의 자유에 도취되어 있는 이콘적 이미지이다.

—고낙범, ‘마네킹—심리적 도상’, 『고낙범 2회 개인전: 마네킹—심리적 도상』(갤러리보다, 1994.1.12-1.25) 도록에서 발췌, 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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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Cyborg W1-W4

1998,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990년대 후반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혹은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이 활발하게 논의되던 시기에 이불은 ‘사이보그’를 모티브로 하여 인간과 기계, 여성과 테크놀로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불은 1997년 실리콘으로 제작된 <사이보그 블루(Cyborg Blue)>와 <사이보그 레드(Cyborg

Red)>를 발표하고, 1998년 유백색 폴리우레탄으로 제작된 연작 <사이보그 W1-W4(Cyborg W1-W4)>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휴고보스상 전시와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에서는 2층 전시장에 <사이보그> 연작 외에도 부드러운 조각 <몬스터: 핑크(Monster: Pink)>(1998/2011)와 <몬스터: 블랙(Monster:

Black)>(1998/2011)을 함께 보여주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3층 전시장에 <사이보그> 4점이 보다 자유롭게 부유하듯이 떠돌며 천장이나 기둥 뒤로 숨어들 듯이 설치될 뿐만 아니라 이불의 다른 작업 및 ‘뮤지움(MUSEUM)’ 그룹의 작업들과

함께 구성되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cybernetic)’과 ‘오가니즘(organism)’을 합성하여 만든 말로 생물과 기계 장치의 결합체를 뜻한다. 1985년 과학사가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사이보그 선언문(A Cyborg Manifesto)’에서 남성 대 여성, 인간

대 인공물 등의 이원론적 사고를 탈피할 수 있는 대안적 가능성으로서의 사이보그를 환영했다. 반면 이불의 <사이보그>는 과장된 비례와 풍만한 몸매, 유백색의 피부를 가진 성적 매력이 극대화된 미래의 여전사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더욱이 <사이보그>의 초기 재료인 실리콘이 여성 들의 성형수술을 위한 인체 보형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이상적인 몸매에 대한 여성의 열망이나 이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이불은 <사이보그>의 출처를 “애니메이션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들의 잘 알려진 이미지” 뿐만 아니라 “미술사에서의 여성 이미지, 이를테면 <피에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마네의 <올랭피아> 등에서 나타난 여성 이미지의 원형”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일본 아니메와 망가로부터 온 여전사로서의 사이보그 이미지 안에는 “슈퍼 휴먼 파워와 테크놀로지의 숭배, 그리고 소녀적 연약함이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작용”하고 있다. 이는 사이보그에 투영되는 여성성 또한 고급문화부터 대중문화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문화적 통로 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산물 이며 그것을 지지하는 시각적 요소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머리와 한쪽 팔다리가 없이 허공에 매달린 <사이보그>의 모습은, 인체를 보완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알았던 테크놀로지의 완벽성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실패로 끝난 유토피아에 대한 꿈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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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정, <무제>

Sen Chung, Untitled, 2016



회화의 기본적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페인팅은 때로 벌거벗은 감성과 지성이다. 그림은 어느 두 세계 사이에 드리워진 하나의 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조적 사색 안에서 부유하는 세계의 추상성과 사유영역의 모호성을 회화 형식으로 취하며, 이를 어떤 의미에서는 독립된 다른 세계로 간주한다. 그 세계는 보편적으로는 캔버스 위에 담기지만 더 나아가서는 건축의 일부로 자리하는 벽화에 의해 원초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것은 의미의 복합성 안에서 미완성처럼 보일 정도로 여전히 회화의 과정 안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체가 어느 세계에 대한 생각의 성숙이고 끝이며 다음 세계로 이끄는 생각의 끈일 수도 있다. 이렇듯 주관적인 ‘미적 판단’을 첫 발걸음으로 하는 모든 회화적 이미지는 화면 안에 어색함과 확신의 사이에서 완성될 시점까지 그 평면의 세계를 부유한다. 전시장 벽면의 페인팅과 종이나 캔버스에 그려진 페인팅이 함께 어우러지며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모습은 일종의 풍경처럼 다소 산만해 보인다. 이에 반해 작품들이 가지는 기본 회화 미학 안에서의 정적이고 대치적인 시각적 긴장감이 부각되도록 의도했다.

—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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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 <꽃>, 1999

«커넥트 1: 스틸 액츠» 전시 전경, 2016

정서영의 <꽃>은 커다란 하얀 스티로폼을 깎아서 만든 조각으로 높이 210 cm, 가로 300 cm, 깊이 250cm의 볼륨감을 지닌 작품이다. 스티로폼은 기존의 정통 조각에선 보통 사용하지 않는 재료이다. 현대 사회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산업이나 공업용 재료인 가벼운 스티로폼이라는 소재 특성과 날카롭게 깎인 단면으로 인해 작품의 중량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꽃>이 만들어진 기원을 도시의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꽃집 간판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거리의 간판들 중 별로 크지 않아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꽃이라는 글자를 간단하게, 꽉 차게 그리고 대부분 붉은색으로 쓴 네모난 종류의 것이다. 그 간판을 보면 누군가가 느닷없이 내 얼굴 정면에 대고 ‘꽃’이라고 명확하게 발음해 놓고는 획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에는 어안이 벙벙하다.” 라고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작가의 글에서 밝혔다. 정서영의 <꽃>은 일반론적인 꽃의 이미지가 아니다. ‘꽃’이라는 제목을 접하지 않는다면 꽃인지 알아보기 힘들기도 하다.

 

정서영의 작품 제목이 불러 일으키는 시각적 연상작용은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세상의 체계에 대해 반문을 던지는 작가의 작업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꽃’이라는 단어는 작가가 직면한 사회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당시 사회에서 흔하게 보이던 꽃이라고 단순하게 명시된 글자를 맞닥뜨리며 느낀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사물을 통해 사회가 끊임없이 구축하는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드러낸다. 사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물의 본질을 사유하고 조각을 둘러싼 관계 간의 긴장감과 균형감, 그리고 리듬감의 영역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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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 수위실, 2000

«커넥트 1: 스틸 액츠» 전시 전경, 2016

사람 키 반만한 높이의 조각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동그란 조명을 위에 얹고 있다. ‘수위실’이란 제목의 조각은 도심의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던 아파트의 수위실을 연상하면서도 단어의 이미지가 맞나 싶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작품은 단어의 이미지를 모방하면서 동시에 모방하지 않는 애매한 크기의 미니어처이다. 더욱이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흔한 싸구려 합판으로 만들어졌다. <수위실>의 조악한 합판이나 <꽃>의 스티로폼이나 모두 흔한 산업이나 공업용 재료인데 작가는 기존의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던 이러한 재료를 사용하여 시대성을 반영하고 관습화된 작품의 권위 밖에서 사물에 대한 다른 경험을 유발한다.

<수위실>의 형태도 건설 붐을 타고 급성장한 한국의 도시에서 획일적인 건축 형태로 지어진 무척이나 익숙한 한국적인 구조 건축물의 수위실 모양이다. 특히나 한국의 도시에서 성장한 우리들의 눈에는 매우 당연하고 익숙한 시설물이다. 그 시설물이 전시장에서 건축물의 미니어처 같은 모호한 크기의 조각으로 우리의 눈을 끌고 단지 기능만 충족하는 무척이나 건조한 건축 구조물의 형태로 등장하여 의문을 자아낸다.

작가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사물의 형태를 제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사물이 처한 상황을 조정한다. 그리고 그 속성을 따라가며 그 당연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특수성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물은 사회의 기능과 형태 양상에 의문을 던지는 작가의 인식을 담는 사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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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 <모르는 귀>

Chung Seoyoung, I don’t know about the ear

2016, Latexfoam, 약 12 x 5 x 1.5 cm

정서영의 <모르는 귀>는 2010년 공연인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에서 출연자의 한쪽 귀로 등장했다. 이 공연에서 모든 출연자는 정체성이 모호한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출연자는 사람이 되어가는 요괴 혹은 요괴가 되어가는 사람으로서 등장했었고 이 귀는 끝이 뾰족한 전형적인 요괴의 귀 형태로 만들어졌다. 지난 작업에서 퍼포머가 쓴 귀가 이번 2016년 아트선재센터의 전시에서 커다란 전시장의 벽에 등장하거나 아니면 한 남자의 한쪽 귀가 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2000년에 보여졌던 <전망대>, <꽃>, <수위실>의 세 작품이 16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보여진다는 문제를 생각하며 이 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16년 전의 시간을 다듬고 문맥화하기 보다는 세 작품이 다시 등장한다면 지금 어떤 지점에 이어 놓을 수 있나를 생각하며 <모르는 귀>를 만들었다. 이 요괴의 귀는 아주 간단하면서 암시적인 동시에 명시적인 순간을 제안하기 위해 등장하며 또한 <전망대>, <꽃>, <수위실>이 펼쳐놓은 공간이 다른 시간으로 흘러나갈 구멍의 역할을 한다.

 

한 남자의 한쪽 귀로 등장하는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 기간 동안 두 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요괴의 귀는 그 전형적인 속성으로 현실공간에 특별한 리듬을 부여한다. 전시장에서 그 귀는 사물로서 벽 위에 나타나 정지된 순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다시 몸이라는 현실에 슬쩍 얹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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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 <전망대>, 1999

«커넥트 1: 스틸 액츠» 전시 전경, 2016

 

 

<전망대>는 작가가 친구에게 받은 엽서의 한 면에 인쇄되어 있던 사진 이미지에서 시작되었다. 그 엽서에는 북유럽 어딘가의 70년대식 수영장 사진이 담겨 있었는데 그 사진의 한쪽 구석에 아주 작은 크기의 전망대의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엽서에서 본 작은 전망대의 형태는 210cm의 높이와 120cm 너비의 조각이 되어 전시장에서 자리잡고 있다. 작가는 제작 과정에서 전망대의 크기가 실제 어떤 크기로 눈 앞에 재현될 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어려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크기란 이미지로서의 전망대를 눈앞 어디까지 끌어낼지를 결정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곧 이 조각의 독자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조각의 제목은 전망대이지만 전망대의 기능은 전혀 지니지 못하고 있다. 얼핏 보면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전망하는 기능을 보유한 건축 조각물로 보이지만 실은 그리 작지도 그리 크지도 않은 애매한 크기이며 무언가를 높이 보거나 멀리 보는 전망대로서의 기능은 충족시키지 못한다. 작가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의 형태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연상되는 단어와 언어의 본래의 기능과 의미에서 벗어나 일반적이고 익숙한 사고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흐트러뜨리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관객은 작가가 제시한 사물 형태 안에서 의문을 던지고 탐구를 할 수 있고 그 사물이 놓여진 공간과의 연계 관계에서 긴장감이 유발된다. 작품이 어느 공간의 어느 위치에 놓이냐에 따라 작품이나 전시가 보여지는 바가 달라지고 관객이 무엇을 보는가가 달라진다. 일단 보여지는 모든 것은 다 언어이다. 사물 내부에서 풍기는 언어, 사물과 공간의 관계에서 표현되는 언어, 전시장에 위치한 사물과 사물 간의 긴장감이 풍기는 언어, 사물의 형태를 지닌 조각과 관객 간의 상응을 통해 관객은 작가가 고민하고 제시한 언어를 자율적으로 느끼며 새로운 사고의 영역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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