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문화갤러리의 2013 가을 전시는 일본 춘화작가 하루카와 나미오(Harukawa Namio 春川 ナミオ )의 드로잉展이다. 나미오는 1947년 오사카 출생으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채, 고등학생 때부터 40년 넘게 그림을 그려 오고있는 작가이다. 전후 일본 대중 에로틱 잡지인 ‘카스토리 잡지’가 범람하던 시절, 나미오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여성과 그녀에게 봉사하고 있는 왜소한 남성을 그려 연재하면서 일본 SM문화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2013년 한국사회는 여전히 일관되지 않은 이분법의 잣대로 끊임없는 사회적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있다. 개인적인 성애적 취향에서부터 생각의 표현, 예술의 표현에 작동되는 이분법의 잣대는 적절한 희생자를 만들고 기성사회를 유지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사소한 이분법>展은 우리 사회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이분법의 잣대에 대한 고민을 던지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이에 전시의 서문은 소설《즐거운 사라》가 외설물이라는 이유로 1992년 구속되었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의 마광수 교수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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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서문

 주체적 에로티즘의 과감한 형상화

글 / 마광수

 

하루카와 나미오의 그림들을 보고 나서, 나는 당장 일본의 에로티시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마음 속에 떠올렸다. 1920~4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최고의 성애소설 작가인 다니자키의 작품들이 모두 남성의 ‘여성 숭배’와 남성의 ‘마조히즘적(的) 성(性) 심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니자키의 소설과 하루카와의 그림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탐미주의적’ 요소의 유무(有無)에 있다 하겠다. 다니자키가 천하절색의 요부(요즘 말로 ‘팜므 파탈’)만을 그리고 있다면, 하루카와는 날씬하고 요염한 요부가 아니라 펑퍼짐하게 살이 찐 ‘뚱보’에 가까운 여성들만을 그리고 있다. 프랑스 화가 르느와르가 풍만한 몸집의 ‘섹시한’ 여성들만 그린데 비해, 확연히 다른 모습의 여성들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루카와 그림이 갖고 있는 비밀스런 묘미(妙味)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화가들은 자신의 고혹적인 외모로 (그리고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바탕을 두고서) 남자들의 사랑을 받아 신분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여성들을 그렸다. 그러나 하루카와의 여자는 엄청난 몸집에서 나오는 ‘힘’을 갖고서, 아예 남자들을 ‘깔아뭉개고’있다. 그야말로 여성상위시대의 상징이요 ‘남자 마조히스트의 증가’의 상징이라 하겠다.

하루카와의 그림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얼굴 표정 또한 가관이다. 다들 고통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자들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복종’을 표시하면서, 마조히스트로서의 희열을 맛보고자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성기의 구조상 남자는 사디스트이고 여자는 마조히스트라고 말했다. 그가 살다간 시대가 가부장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런 신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부장시대가 아니고 남녀평등시대이다. 아니, 남녀평등을 뛰어넘어 ‘역차별’에 의한 ‘남성몰락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은 점점 더  태고시절의 ‘모계중심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남아선호사상’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호적제도도 철폐되어 아이가 어머니의 성(性)을 따라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변화의 징후들을 똑바로 파악하고서, 하루카와는 그의 그림들 속에 변화된 시대상을 과장적이고 에로틱하게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남성으로서의 허세를 전혀 부리지 않고서, 솔직하게 ‘변화의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을 다 비만한 몸집의 소유자로 그림으로써 ‘우먼파워’를 보여주고, 남자들을 다 말랑깽이로 그림으로써 ‘남권(男權)의 추락’을 보여준다. 아니면 화가 자신이 소설가 다니자키처럼 ‘여성숭배형 마조히스트’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세상에서는 남자 마조히스트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사디스트는 ‘책임’을 지고 지배해야 하기때문에 골치아픈 것이고, 마조히스트는 ‘책임을 지지않고’ 복종만 하기 때문에 편안한 것이다. 사실 모든 종교의 뿌리는 마조히즘에서 나왔다. 신(神)에 대한 ‘절대복종’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게 모든 종교의 공통적 주장인 것이다.

하루카와 그림을 보고서 나는 이토록 대담한 변태성욕(?)을 마음껏 형상화시킬 자유가 있는 일본의 문화풍토가 참으로 부러웠다. 나는 성적(姓的)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소재로 한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감옥살이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쪼록 이번 전시회가 한국 화단에 참신한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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