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식을 잡아 먹은 아버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라 불리는 주신(主神)이다. 이런 제우스도 아버지 크로노스가 있다.

크로노스는 제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고 자식을 잡아먹는 충격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러 화가들이 작품으로 그려냈다.

태초의 혼돈(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가 생겨났고, 가이아는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하늘)와 12명의 티탄,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3형제, 100개의 팔과 50개의 머리를 가진 헤카톤케이르 3형제를 낳았다.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르는 말썽을 일삼았고 이들의 흉측한 외모 또한 끔찍하게 여긴 우라노스는 이들을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가둬버렸다.

타르타로스는 대지 가이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자식들을 어미의 몸 속에 가둔 우라노스의 폭압에 고통 받은 가이아는 분개했고 막내 아들인 티탄족 크로노스가 나서 우라노스에게 복수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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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바사리 <아버지이자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크로노스는 가이아가 만든 낫으로 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해 바다에 던져버리고는 그가 아버지를 쫓아냈듯이 그 역시 제 자식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우라노스의 저주를 받게 된다.

크로노스는 이 말이 두려워 저주를 피하고자 누이이자 아내였던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먹어 치워버렸다.

자식을 잃는 고통에 시달리던 레아는 막내 아이를 낳고 돌을 보자기에 싸서 크로노스를 속이고 그 돌을 먹게 한다. 아버지에게 먹히는 운명을 간신히 피해 살아남은 이가 제우스다.

후에 제우스는 크로노스 뱃속에 있는 형제들을 모두 토해내게 하여 그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인 크로노스 뿐만 아니라 크로노스의 형제인 티탄족을 정복하고 크로노스를 지하세계 타르타로스에 가뒀다.

우라노스를 내쫓은 뒤 신들 위에 군림하던 크로노스는 제 자식들을 모두 잡아먹었음에도 결국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제우스와 형제들은 내쫓긴 크로노스의 영토를 분할하여 차지하고 이렇게 제우스는 신과 인간들의 왕이 된다.

제 자식을 먹어 치운 크로노스의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으로는 루벤스와 고야의 작품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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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듯한 아이의 부드러운 가슴을 물어 뜯고 있는 크로노스가 묘사되어있다. 몸의 왼편으로 아이를 단단히 잡고, 아이를 잡아먹기 위해 균형이라도 잡듯이 오른손엔 낫의 자루를 꽉 쥐고 디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에 피가 묻든 아이가 울부짖든 개의치 않고 살점을 뜯는다. 백발의 노인이지만 팔과 다리의 근육, 거신(巨神) 크로노스의 골격에 대립해 발버둥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아이의 모습이 꽤 공포스럽다.

크로노스(Cronos)는 수많은 작품에서 낫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농경신 사투르누스(Saturnus)와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또 시간의 신 흐로노스(Chronos)와 구별되었지만 후에 유사한 발음 때문에 그 의미를 같이 두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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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도로 다 카라바조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짧은 낫을 사용하고 있다), 판화

농업신의 상징물인 낫은 초기엔 짧았다. 짧은 낫은 수확에 직접적으로 쓰이며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후에 낫의 크기가 커지며 시간의 속성 또한 커져 세상의 모든 것을 베어버리게 되었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게 자연의 섭리이듯이 시간은 땅에 태어난 모든 것을 삼킨다.

태양계의 행성 중 가장 큰 목성(Jupiter)이 최고 신 제우스를, 금성(Venus)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의미하듯 토성(Saturn)이 크로노스-사투르누스를 의미하며, 토성의 영어 표기는 Saturnus에서 따온 것이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세 개의 별은 토성과 그 위성으로, 고대 때부터 ‘대 흉성’ 으로 불린 토성의 속성인 춥고 느리고 어둡고 두려움과 고립을 가져오는 부정적인 의미가 사투르누스에 더해졌다.

이렇게 크로노스는 신화 속 인물들 중에서도 여러 이미지가 겹쳐 고착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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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사투르누스>

또 다른 명작 고야의 묘사는 어떠한가?

루벤스와 고야의 작품은 세로로 길며 크기도 비슷하다. 후에 사투르누스를 그린 고야가 루벤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이렇게 화면을 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야의 사투르누스에는 위에서 언급한 크로노스의 상징성은 모두 배제되었다. (대부분의 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그림엔 그의 상징물들이 등장한다) 그의 큰 몸집은 거신 티탄족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그저 거대한 미치광이 괴물로 보이며 한쪽 무릎은 주저앉아버렸고 아이의 몸통만한 두 손은 허리를 꽉 쥐다 못해 살점을 깊게 파고 들고있다. 아이의 머리와 오른팔은 이미 먹혀버려 피범벅이 되었고 아이의 왼팔이 그의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있다.

루벤스의 사투르누스는 아이를 팔로 안고 가슴팍의 살점을 뜯는 모양이 마치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듯 침착해 보이지만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광기에 사로잡혀 아이를 마구자비로 살육하는 모습이다. 뒤집어질 것처럼 크게 뜬 눈에 벌릴 대로 벌린 콧구멍, 아이의 팔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광기를 못 이겨 소리를 치는 것 같다. 루벤스 그림의 아이는 울며 조그만 소리라도 낼 수 있었지만 이 그림에선 이미 몸이 차갑게 굳어 조금의 저항도 할 수 없게 된 죽은 아이만이 있을 뿐이다.

저주가 두려워 제 자식을 먹는 것이 숙명인 듯 멈출 수 없는 크로노스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행동 또한 두려워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을 삼키는 크로노스는 결국 자신까지 삼켜버린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고야의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고야가 구입한 별장의 벽에 그려진 14점의 벽화 중 하나로 원작에는 발기된 성기가 그려져 있었다. 사티스트적 쾌락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복원자에 의해 그 부분은 수정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끔찍하기로는 루벤스보다는 고야의 그림이 강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선 고야의 사투르누스를 올리며 제목엔 ‘혐짤주의’를 붙인 글이 올라오기도 할 정도로 두 그림 모두 속 이야기를 모르고 본다면 그저 인육을 먹는 괴기한 그림으로 보일 것이다. (혐짤주의 – 혐오스러운 사진이나 그림 등이 담겨있는 글임을 미리 제목에 알리는 표현이다)

서양화를 보다 즐기기 위해선 그리스로마신화를 떼어 놓을 수 없다. 섬뜩한 이 그림을 그리스로마신화의 배경지식 없이 접했을 때의 느낌과 이야깃거리를 함께 떠올리며 감상하는 것은 천지차이 일 것이다. 미술 작품 그 자체를 보는 것도 물론 즐거움을 주지만 작품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알고 보는 즐거움은 더할 것이다.

현대 미술에서의 회화의 목적은 더 이상 사실을 재현하는 데에 있지 않고 작가의 주관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감상자가 작품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 전에 작가가 작품에 이야깃거리를 잘 담아내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진정으로 그대의 가슴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면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괴테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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