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외로운 삶이 그리는 질서를 믿는 화가<꿈이 있는 인터뷰> 그림에 바느질하는 여자, 해밀

첫 개인전, 가난과 고독에서 용기를 얻다

▲ 1996년, 자취방에 그린 벽화 앞의 해밀.     ©해밀

십육 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텅 빈 벽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고 싶은 것이 현실 때문에 불가능해지는 게 익숙해질 무렵, 그녀가 화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 여름 그녀의 첫 개인전시회에 다녀왔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展’이라는 전시회였다. 팸플릿에는 짤막한 문장이 있었다.

‘삶은 내게 절망스러운 현실과 희망의 끈을 동시에 주었다. 절박한 가난함과 누구와도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고독함이 작업에 대해 더 큰 열망을 가지게 했고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 밖으로 과감하게 나올 수 있는 용기를 내게 주었다.’

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십대 때 혼자 자취하면서 오래된 물감으로 벽화를 그리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자신이 ‘그림을 꼭 그려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고민했고’ 그러면서 2000년에 재료 쓰는 방법을 배우려고 개인 화실에 몇 개월을 다녔다고 했다.

“그림을 나 혼자만 집에서 그리다가 나란 사람이 그림으로 세상에 소통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삶이 안 돼서 이렇게 온 거지, 화가가 될 기질이 다분하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언제나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일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야간으로 미술을 공부할 곳이 없었다. 그림에 대해 남들이 다 아는 정도는 알고 싶어서 야간 학교를 찾았다.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해서 나하고 맞지 않는 하기 싫은 일을 너무 오래 하는데 간절하게 원하는 꿈조차 제대로 안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 예술대학에 입학하고 미술을 공부했다. 이십대 새내기들이나 기존 작가가 섞여 있는 가운데에서 공부했다. 해밀은 직장에서 영업 쪽 일을 해서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일해 팀장이 되어 받는 월급이 있었는데 학교에 다니기 위해 팀장을 그만두고 다시 신입직원하고 똑같이 영업일을 해야 했다.

“학교를 다니기 직전이나 학교 다닐 때 그림 스타일이 있는데 제가 살아오면서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롭고, 어떤 슬프고 아픈 단어 앞에 ‘너무’라는 단어가 들어간단 말이에요. 속에 나도 모르게 응어리진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미술로 속에 내 응어리진 걸 표현하고…… 그럴 때 임페스토 기법이라고 해요, 물감을 그냥 진짜 한 번에 발산하듯이 저도 미처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급하게 많은 물감을 쓰면서 작업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너무 많은 짐을 진, 저 개미가 나 같아’

▲ 해밀은 낮에 직장에서 일 하면서 야간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나하고 맞지 않는 일을 하는데 간절하게 원하는 꿈마저 그래선 안된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회에서 미술로 학업을 인정받고 세상에 나가기는 어렵다 싶었다. 그녀는 2008년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했고 201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을 했다. 같은 해 대한민국 미술대상전에서 특선을 했다. 서울에서 열린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발상전’과 중국 길림성 박물관에서 열린 현대미술 우수작가 초대전, 국제교류 하모니전에도 참여한 실력 있는 젊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나라 미술계의 시스템에서 자신이 계속 작업하기에는 무리한 상황이고 간극이 높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첫 번째 개인전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나란 사람이 너무 작고 내가 늘 이렇게 뭔가 아등바등하다가 이대로 죽는 거 아닐까, 끝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작품을 한번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 작품을 죽 놓고 보면 스스로가 아팠어요. 전시를 앞두고 이것을 재해석하려면 어떻게 할까, 아픈 내면을 치료하고 수술해주고 싶은 욕구가 들어서 낚싯줄을 바늘에 꿰어 그림에 바느질을 했어요.”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모티브를 발견했다. 그것은 ‘개미’였다.

“언니 집에 가서 조카가 그림 그린 걸 보는 데 개미가 사과 같은 빨간 덩어리를 쥐고 있는 걸 봤어요. 저 개미가 나 같다, 나처럼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거 같아. 개미가 사과에 깔려 죽잖아요. 집에 와서 작업에 내가 어떤 메시지로 개미를 넣어야 할지 생각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는 어렸을 때 장난감 같은 거 구경한 적이 없어요. 중학교도 자퇴를 했는데, 단 한 번도 새 참고서로 공부해본 적도 없어요. 어디에서 중고를 얻든지, 생각하면 애들 먹는 거 흘린 거도 주워 먹고 했단 말이에요. 어쨌든 지금까지 지내면서 아주 위험한 일을 피해가며 생존해 있어요. 개미가 주는 메시지가 저한테 컸어요.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출발선도 다 다르잖아요. 삶 속에서 누구한테 보여지지도 않고 너무 작고 왜소하고 하찮게 살아가는 나……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지내다보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잖아요.  저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저 사람들의 끝은 어떨까. 그 끝이 늘 슬펐어요.”

삶을 만들어 가는 건, 수많은 관계 속의 이야기들

▲ ‘굴레’라는 그림의 디테일 컷.  개미의 주변으로 투명한 낚싯줄을 바늘에 꿰어 한 땀 한 땀 캔버스를 꿰멨다.  ©해밀

“저는. 제가 이제 많이 행복해진 게, 개미를 계속 그리다보니까 얘네들이, 무질서한 중에도 질서가 생기고 어떤 형태를 만들어가잖아요. 저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 삶이 모이면 반드시 어떤 의미라도 가지게 되겠구나, 어떤 삶의 끝을 생각하게 되고 의미를 갖게 되는 게 달라졌어요.”

그녀가 발견한 개미는 작업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했다. 이전엔 그리고 싶은 느낌대로 그려나갔다면, 지금은 호흡도 절제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작업실에는 아크릴 물감으로 검게 칠해진 대형 캔버스가 있었다. 그것은 기본 칠을 다섯 번 하면서 붓털 하나 묻지 않게 작업한 후 다시 말리고 칠하고 말리고 칠하는 과정을 여덟 번을 반복해 마쳐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개미를 올리기 위해서죠. 미약한 존재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밑작업을 충실하게 하는 거예요.”

그 위에 바느질이 올라가고 개미가 올라갈 것이었다. 그녀는 투명한 낚싯줄을 바늘에 꿰어 한 땀 한 땀 캔버스를 꿰매고 그러기 위해 그림의 나무틀을 톱으로 자르고 다시 이어붙이기도 한다. 낚싯줄로 작업하는 건 끈과 끈의 매듭을 연결함으로써 끊어진 자아를 연결하거나 관계를 재해석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개미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첫 시작, 태어남이에요. 사람이 태어나면서 한 점을 찍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수많은 점과 점들이 만나잖아요. 저도 태어나서 맨 먼저 본 사람이 할머니하고 아빠인데, 가족, 사회, 여러 관계가 이어지잖아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삶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나의 그림이 고통 받는 이에게 위로가 된다면

요즘 그녀는 직장에서 종일 일하고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작업한다. 추운 작업실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에 바로 출근한다. 외롭지 않냐고 내가 물으니 ‘외로움은 필수’라며 웃었다. 12월에 전시회가 있어서 그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 내면에는 끄집어내기 힘든 고민과 아픔이 있을 것 같아요. 제 작품을 감상하다가 자기 안에 응어리진 어떤 슬픔, 아픔, 고독함, 고통, 이런 거를 만나고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막 슬프고 아픈데 그걸 감추고 있을 때 누가 건드리며 위로 한마디를 해줄 때 툭 터지는 눈물이 있잖아요. 제 작품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보다 더 큰 아름다움은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예쁜 그림, 기분이 유쾌해지는 그림도 있지만,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고독함이나 생각하게 하는 작업, 아픈 작업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 작품 명 <1+1=1>의 디테일 컷.     © 해밀

마지막으로 그녀가 숨겨놓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요, 전업화가가 제 목표인데, 그 과정이 더 힘들게 남아 있을지 어떨지는 예측을 못하겠어요. 그림 그리는 일이 제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고 꿈이고 하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는 나눔이에요. 세상이 똑같은 개미, 점인데 거기에서 누군가 더 많이 갖고 태어나잖아요. 조금 더 다른, 좀 다른 특혜 받는 삶을 산다면 그건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눠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데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잖아요.

제 작품도 어둡고 아픈 이런 쪽으로 하는 이유도 좋은 것보다 힘들고 아픈 걸 좀 더 나누고 싶기 때문이에요. 제가 나중에 재능을 인정받아서 제 작품으로 여유로워지면 그것도 나누고 그 과정에서도 나누고 서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감사해요. 온전하게 제가 원하는 대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캔버스에 한 마리, 한 마리 그려진 개미들, 한 땀, 한 땀 공들여 꿰맨 자국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삶에 대한 뜨거운 격려이자 찬사이며, 그녀가 온몸으로 보내는 갈채다. 아프고 고통 받는 이들이 이루는 장엄한 질서에 대한 믿음. 나는 그 갈채를 다시 그녀에게 보내고 싶다. 그녀가 선택한 삶과 꿈을 우리 모두를 위해 응원하고 싶다.

전시안내> 해밀 개인전
전시기간: 12월 19일~12월 25일
전시장소: 갤러리 라메르(인사동) 1층 2관 (홈페이지: 
http://www.gallerylamer.com)
관람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안미선 기자

원문 기사   http://ildaro.com/sub_read.html?uid=6210&section=sc8&section2=%C0%CE%C5%CD%BA%E4

About chief editor

다양한 문화 예술의 ARTNEWS 입니다. 보도 수신 은 editor@artnews.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