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해링, 탐 웨슬만,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 70여점 전시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 전시, 팝아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전면을 만나보는 기회

◆ 예술의 역사 속에서 대중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팝아트’
‐일상 풍경 속에서 찾아낸 특별한 예술인 팝아트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고, 평범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쾌한 시간 선사

◆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small objet 및 다양한 상품 함께 전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서재 The Den from Interior Series>

131×167cm, Woodcut, Lithograph and Silk Screen, 1990

<전시내용>

롯데갤러리는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The Great of POP ART>展을 개최합니다. 팝아트는 1950년대에 영국에서 시작해 6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된 현대 미술의 한 경향으로서, 자본주의의 영향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산업 사회의 모습들을 다양한 방식들로 미술 작품에 수용하였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광고와 같은 매스 미디어와 대중 문화 속에 등장하는 시각적 코드들을 적극적으로 예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 미술과 대중 미술, 상류 문화와 저급한 상업 예술 사이에 존재하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구분을 뛰어 넘는 새로운 미적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을 재치 있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팝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엄숙하고 경건한 예술과는 구별되는 밝고, 경쾌한 미감을 보여주면서 보다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키스 해링(Keith Haring), 탐 웨슬만(Tom Wesselmann),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의 작품들을 전시합니다. 대중적인 상표나 인기 스타를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앤디 워홀’, 만화를 팝아트적으로 재해석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낙서화의 형식을 빌린 독창적인 표현 방법으로 사회 문제들을 언급한 ‘키스 해링’, 가장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 팝아트를 표현한 ‘탐 웨슬만’, 회화 같은 조각 기법으로 일상의 모습을 신나는 축제의 장면들로 표현한 ‘데이비드 걸스타인’. 이들의 작품들을 통해 팝아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전면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친숙한 풍경 속에서 찾아낸 특별한 예술인 팝아트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평범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쾌한 시간을 선사할 것입니다.

<출품 작가 및 주요작품>

1.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 ‘팝아트의 아버지’

앤디 워홀은 주로 코카콜라나 캠벨 스프와 같은 상품이나 패션 제품, 달러 기호, 유명인의 초상 등 미국의 물질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실크 스크린 판화 기법을 통해 제작하였다. 실크 스크린(silk screen)이란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인쇄의 기법으로서, 그는 특정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복사함으로써 예술이란 예술가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부정하였다. 또한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 부르고 예술을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상품과 같은 대량 생산물로 표현하며 예술의 상업성과 대중성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에 물든 미국 문화의 새로운 예술로 인정받으면서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앤디 워홀 <마를린 먼로 Marilyn Monroe> 91x91cm, Silk Screen, 1967

앤디 워홀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출생하여 카네기 공과대학(Carnegie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뉴욕으로 이주해 잡지 삽화가, 광고 제작자로 활동하며 상업미술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2년 뉴욕 휴고 갤러리(Hugo Gallery)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순수미술계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1962년 뉴욕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Sidney Janis Gallery)에서 열린 <새로운 사실주의자들> 전시에 참여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발과 선글라스로 스스로를 위장하기도 하였지만, 언제나 유명하고 인기 있는 것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유명 스타, 정치인들과 친분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이미지를 이용한 ‘스타’시리즈를 계속 제작했으며, 마를린 먼로 연작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1962년 마를린 먼로가 사망하자 그녀의 1952년 출연작인 <나이아가라(Niagara)>의 광고용 사진 중 한 장을 골라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2.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 ‘만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주로 신문이나 TV에서 주제를 찾았으며, 만화캐릭터와 만화적 기법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양식을 창조하였다.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간결하고 명확한 선과 강렬한 원색, 망점의 다양한 사용이다. 특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점들은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생기는 망점인 벤데이 도트(Benday‐Dot)를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으로서,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방식과 인쇄된 만화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직접 도입하여 만화란 통속적이고 저급한 상업 미술이라는 당시의 통념을 깨고 대중과 소통하는 친숙하고 독창적인 예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특징은 만화 연작 외에도 강렬한 붓자국을 확대하여 그 위에 글자나 인물의 얼굴을 표현한 ‘Brushstroke’시리즈와 90년대 초중반에 주로 작업했던 ‘인테리어’시리즈, 유화나 프린트, 수채화 등 서로 다르게 제작된 두 그림을 한 화면에 배치해 놓은 ‘두 개의 그림’시리즈에서도 잘 나타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두개의 그림‐데그우드 Two Paintings‐Dagwood> 130x91cm, Woodcut and Silk Screen, 1984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뉴욕 맨하튼 출생으로 공립학교에 입학, 플랭클린 스쿨(Franklin School)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취미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 입학하여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졸업 후에 10년간 미술을 가르쳤다. 1951년 뉴욕 칼바쉬 갤러리(Carlebach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만화를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 그린 그림인 <이것 좀 봐! 미키(Look! Mickey)>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만화의 강렬한 색채와 표현력을 재발견하고, 만화 이미지를 이용한 팝아트적 회화작업을 이어나갔다.

3.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 ‐ ‘길거리 낙서화의 재탄생’

키스 해링은 하위 문화로 인식되었던 낙서화를 아기, 짖는 개, 인간, 기계, 가위, 컴퓨터 등의 친숙하고 기호화된 형태와 강렬한 원색을 통해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게 표현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길거리, 지하철, 클럽의 벽에 그림을 주로 그렸으며,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의 사회문제를 다루기도 하였다. 깊이 있는 사회 문제들을 단순한 표현 양식으로 함축시켜 친근하고 쉽게 풀어낸 그의 그림은 현실적 사안들에 대해 발언하는 예술가의 독특한 역할과 위치를 잘 보여준다. 1981년 로스앤젤레스 토니 샤프라치 갤러리(Tony Shafrazi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을 계기로 스타작가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상위예술과 하위예술 간의 격차를 무너뜨린 새로운 회화양식을 창조해 뉴욕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키스 해링 <무제(팝샵 III B) Untitled(Pop Shop III B)> 41.2×33.5cm, Silk Screen, 1989

키스 해링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레딩(Reading)에서 태어났다. 피츠버그의 아이비 전문예술학교(The Ivy School of Professional Art in Pittsburgh)에 입학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였지만, 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뉴욕으로 이주하여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80년 시각예술학교 또한 중퇴하고 지하철 및 거리의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1980년 개인전을 비롯해 수많은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앤디 워홀과 마돈나 등 유명인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그 중에서도 앤디 워홀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작가였으며, 워홀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단시간에 유명 화가가 된 해링은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 하던 중 1986년 뉴욕 소호 거리에 팝 샵(Pop Shop)을 설립해 자신의 작품을 적절한 가격에 제작, 판매하였다.

4. 탐 웨슬만(Tom Wesselmann 1931~2004) ‐ ‘가장 미국적인 사고방식의 표현’

그는 주로 실내 풍속화와 누드화를 주제로, 원근법이 배제된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의 독특한 팝아트 형식을 구사하였다. 밝고 경쾌한 원색을 사용한 실내 풍경과 정물화를 통해 당시 유럽의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상업적인 미국의 낙천적인 공간을 담고자 하였으며, 적나라한 성적인 이미지들로 미국의 개방적인 성문화를 표출하는 등 미국의 팝아트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표현한 작가로 평가 받는다. 다른 팝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매스 미디어 광고나 TV, 영화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의 단면이나 상업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꽃, 라디오, 술병 등 실제 사물과 유명 스타를 혼용하여 조화로운 화면을 완성하였다.

탐 웨슬만<리즈 테일러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Liz(Warhol)> 148×144.5cm, Silk Screen, 1993

탐 웨슬만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심리학을 전공하다 1952년부터 2년간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이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전후 신시내티 미술 아카데미(Cincinnati Academy of Fine Arts)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잠시 동안 풍자 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뉴욕으로 이주해 쿠퍼 유니온 대학(The Cooper Un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Art)에 진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순수미술에 입문하였다.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후에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에게 큰 영향을 받아 콜라주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TV 광고와 영화의 간판을 그리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광고사진이나 산업 생산품, 혼합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을 이어나갔다. 웨슬만은 뉴욕의 예술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뉴욕에서만 4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2004년 12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5.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 1944~) ‐ ‘축제와 같은 일상의 풍경’

데이비드 걸스타인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특유의 밝고 대담한 색채와 철과 나무를 이용한 컷아웃(cutout) 작업을 통해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종이에 그린 드로잉을 컴퓨터 작업을 거쳐 다시 강철을 레이저 컷팅을 하는 방식으로 탄생하며, 그 위에 작가가 직접 붓이나 실크스크린 기법 등을 통해 채색 하여 회화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회화의 평면성과 조각의 입체성이라는 이중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으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정물, 도시 풍경,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들의 활동 모습 등 평범한 일상을 담은 이미지들을 다채로운 색채를 통해 축제와 같이 경쾌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화려한 붓터치와 역동적인 리듬감이 특징적이다.

 

데이비드 걸스타인 <Burning Lips> 98x120cm, Hand Painted Cutout Steel, 3Layers, 2010

데이비드 걸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베자렐 미술 디자인 아카데미(Bezalel Academy of Art & Design)에서 그래픽 아트와 공예를 공부하였으며, 졸업 후 국제적인 예술 경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프랑스로 이주해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였다. 또한 뉴욕 아트 스튜던트리그(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와 런던 세인트 마틴스쿨(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Southampton Row)에서 차례로 수학하였으며, 스스로 1960년대 팝아트의 선구자적인 작가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1971년 예루살렘 엔젤 갤러리(Angel Gallery)에서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프랑스, 한국, 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열린 개인전과 단체전에 꾸준히 참여하는 등 현재에도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러 레이어로 제작되어 공간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외부 환경과 특정한 관계 속에 높이는 공공 조각물에서 특히 더 그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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