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시간 Abstract Time’ 갤러리 이배

 

‘추상적 시간 Abstract Time’
2012. 10. 20(토) ~ 11. 10(토)                    ※매주 일요일 휴관
2012. 10. 20(토) 오후 3시 갤러리 이배 전시실
갤러리 이배 전시실

갤러리이배는 2012년 10월 20일(토)부터 11월10일(토)까지 정혜련 작가의 ‘추상적 시간 Abstract Time’ 전을 기획했다. 나무와 가죽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다양한 주제의 작업을 선보여 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공간을 횡단하는 나무들을 매개체로 하여 기억을 담은 입체 드로잉을 전시한다. 작가는 머릿속의 기억들이 현재의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물이며,  작품에 드러나는 조형성이 실은 무의식의 세계 혹은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작업한다. 따라서 작가에게 과거란 폐기된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지속적인 토양으로 간주된다. 스스로가 끌리는 작업을 해야 작가로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영감을 얻고, 어떠한 의도된 장치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담아 작업을 완성한다. 정해진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억지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정혜련 작가의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과 어떠한 공감대를 형성할 지 기대된다.

 작가는 작업하는 행위를 기억을 생산해 내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머릿속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생각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다이달로스가 설계해 놓은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의 옷깃에 꿰어준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생각의 흐름을 찾기 위해 자작나무 패널을 이어붙인 구불구불한 길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는 단절된 듯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듯 지각되지만 실제 구조적으로 연결된 기억을 추적하기 위한 장치로 비정형적으로 뒤엉긴 실타래와도 같은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마구 뒤섞인 가죽 띠 덩어리를 매달아 놓았다.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완만한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기보다 유동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유기체인 인간이 마음의 움직임을 포기하는 순간 기억도 응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되지 않고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복원되는 기억의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 시공간이다. 지나치게 과학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시간의 개념은 기억 속에서는 추상적인 것이 된다. 기억과 연계하여 시간이란 개념을 추상적으로 본다면 작가가 작업의 모티브로 설정한 ‘추상적 시간’은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롤링된 나무를 이용해 공간에 자유롭게 그린 입체 드로잉의 성격을 지닌 작품들, ‘추상적 시간 abstract time’에는 공간이 배제되고 물리적으로 현존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그야말로 ‘추상적인 시간’만이 존재한다. 이 추상적 시간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작품 속에 ‘운동’을 도입하고 있다. 마치 시계바늘처럼 느리게 돌고 있는 여섯 개의 원반은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의 시간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돌고 있는 선들의 운동일 뿐이다. 그가 그려놓은 회전하는 선들은 시공간을 흡수하면서 원심을 향해 수렴되는 블랙홀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거의 원(圓)에 가깝도록 휜 자작나무를 이어붙인 작품은 마구 뒤엉킨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킨다. 어지럽게 엉겨있으나 기본적인 모듈은 한 부분이 열려있는 원이기 때문에 이어붙이는 방향에 따라 자유로운 ‘공간 드로잉’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구조적 특징이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는 복잡하지만 실타래처럼 마구 뒤엉긴 것이 아니라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구조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복잡한 형태는 시간이 직선운동을 한다는 상식을 위반한다. 나선형으로 흐르면서 뒤죽박죽인, 그러나 이 복잡성 속에 단순한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반대편에 조명을 부착한 것도 우리의 눈이 이러한 자유로운 흐름을 따라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장치인지 모른다. 이 작품은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을 지시하지 않는다. 연속되는 굽은 호(tilted arc)가 뒤섞인 상태는 해독할 수 없는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한 켠에 매달려 돌아가고 있는 비정형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가죽 띠로 만든 물체이다. 와이어로 매달려 있으나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무구조물에 비해 가죽으로 만든 물체는 더욱 복잡하고 비정형적이며 더욱이 모터에 의해 움직이는 원반에 고착한 것이기 때문에 굽은 나무의 팽팽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어붙인 나무가 공간에 그려놓은 선은 이 가죽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조금씩 흔들리며 수없이 어지러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정혜련이 보여주고 있는 ‘추상적 시간’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에 담아놓은 시간의 덩어리와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속성조차 사라지고 있다. 구조물의 출발점이 곧 귀결점이 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시간을 빌어 어지럽게 미끄럼을 타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마음의 상태를 그려놓은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혜련 작가는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에 선정되면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송암문화재단 신진작가 선정, 봉생청년문화상, 하정웅청년작가상, SEMA신진작가, 김종영미술관 2012 올해의 젊은 조각가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2년 이후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매 전시마다 새로운 시도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발견하고 개발해 나가며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앞으로의 그의 행보에 더욱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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